티스토리 뷰
목차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런, 그리스 신화, 오디세우스, 트로이 목마, 아이맥스, 2026 영화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이거 그리스 신화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제작비 약 3,500억 원, 영화 역사상 최초 전편 아이맥스 필름 촬영이라는 수치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무게감을 갖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서사의 뿌리, 즉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조금은 알고 가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배경을 정리해 봤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가장 거대한 하이라이트, 오디세이아란 무엇인가
저는 어릴 때 그리스로마 신화 만화를 꽤 열심히 읽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전부 트로이 목마, 외눈박이 거인, 세이렌의 노래 같은 에피소드들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장면들이 전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두 서사시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서사시로, 기원전 8세기 무렵 현재와 비슷한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서양 문학 작품이자 서양 서사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습니다(출처: Britannica).
여기서 잠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차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해를 무대로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영웅들의 죽음을 담은 전쟁 이야기입니다. 반면 <오디세이아>는 그 전쟁이 끝난 직후, 살아남은 한 인간이 집으로 돌아가는 10년의 모험을 다룹니다. 쉽게 말해 전자가 "어떻게 싸웠는가"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살아남은 뒤 어떻게 돌아왔는가"의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작가 레몽 크노는 "인류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발명한 것 같지 않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를 단순화하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일리아스 아니면 오디세이아다"라는 표현이 됩니다. 전쟁과 대립, 영광과 몰락의 구조는 일리아스를 닮고, 낯선 세계를 여행하며 시련을 겪은 뒤 귀환하는 구조는 오디세이아를 닮는다는 의미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왜 이 소재를 택했는지, 그 맥락이 이 지점에서 어느 정도 읽힙니다.
트로이 목마 탄생까지, 오디세우스가 전쟁에 나간 진짜 이유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라는 작은 섬의 왕입니다. 그는 아킬레우스처럼 전장을 압도하는 전사형 영웅이 아닙니다. 지혜와 속임수, 임기응변으로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뚫어내는 인물, 이른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전략가입니다. 영화에서는 맷 데이먼이 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 오디세우스가 어떻게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가게 됐는지가 이 서사의 첫 번째 핵심입니다. 그 출발점은 틴다레오스의 맹세, 즉 헬레네의 구혼자들이 맺은 집단 서약입니다. 여기서 틴다레오스의 맹세란, 헬레네가 누구를 남편으로 선택하든 그 결혼을 공동으로 보호하고, 위협하는 자가 있으면 모두 힘을 합쳐 막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해결책을 직접 제안한 사람이 바로 오디세우스 자신이었습니다.
헬레네는 결국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와 결혼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떠나버립니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우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은 과거의 맹세를 지키라며 그리스 전역의 왕과 영웅들을 소집합니다. 맹세를 제안했던 오디세우스는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미친 척 연기를 시도했습니다. 소와 당나귀를 한 쟁기에 묶어 엉뚱한 밭을 갈고 소금을 뿌리는 행동으로 정신이상을 위장했습니다. 그러나 팔라메데스라는 영웅이 갓난아기 텔레마코스를 쟁기 앞에 내려놓으며 그 꾀병을 들통 냈습니다. 진짜 미친 사람이라면 아기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험이었는데, 오디세우스는 쟁기를 돌려 아들을 피했고 결국 전쟁터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10년간의 공성전 끝에 나온 것이 트로이 목마입니다. 그리스 군은 거대한 나무 말 안에 정예 병사들을 숨기고 마치 철수한 것처럼 위장합니다. 트로이 사람들은 적의 선물을 경계하라는 라오콘 사제의 경고를 무시하고 목마를 성 안으로 들입니다. 이 장면은 훗날 "beware of Greeks bearing gifts(적이 베푸는 호의는 조심하라)"라는 격언의 기원이 됩니다. 밤 사이 목마에서 나온 오디세우스와 병사들이 성문을 열었고, 10년 동안 버텼던 트로이는 단 하룻밤에 무너집니다.
- 틴다레오스의 맹세: 헬레네의 결혼을 공동 보호하겠다는 구혼자들의 집단 서약
- 트로이 목마: 거대한 나무 말 내부에 병사를 숨겨 적진을 함락시킨 기만 전술
- "beware of Greeks bearing gifts": 적의 호의를 경계하라는 격언의 어원
- 팔라메데스의 시험: 갓난아기를 쟁기 앞에 놓아 오디세우스의 꾀병을 간파한 방법
귀환길을 막은 것들, 폴리페모스부터 칼립소까지
전쟁에서 이긴 영웅이 왜 집에 10년이나 못 돌아갔는가, 이 부분이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입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히 바다가 험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들여다보면 결정적인 원인은 오디세우스 자신의 오만이었습니다.
귀환 초반, 오디세우스 일행은 외눈박이 거인족 키클롭스가 사는 섬에 도착합니다. 키클롭스는 한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외눈박이 거인 종족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그중 오디세우스 일행을 동굴에 가둔 거인의 이름이 폴리페모스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그 동굴에서 "우티스(Outis)", 즉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는 가짜 이름을 사용해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하고 양 떼 아래에 숨어 탈출합니다. 주변 거인들이 "누가 너를 공격했느냐"라고 물었을 때 폴리페모스가 "아무도(Nobody)"라고 외쳤으니, 다른 키클롭스들은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어유희를 이용한 완벽한 기만이었습니다.
문제는 탈출 직후였습니다. 충분히 멀어졌다 싶자 오디세우스는 배에서 폴리페모스를 향해 자신의 본명을 고래고래 외칩니다. 제 경험상, 이 장면이 원전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읽힙니다. 완벽한 전략가도 결국 자기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욕망 앞에서는 무너진다는 것이죠. 폴리페모스의 아버지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었다는 사실이 여기서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폴리페모스의 저주를 통해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에게 "모든 동료를 잃고 남의 배를 얻어 타고 고통 속에 돌아오라"라고 선고합니다.
이후의 귀환길은 그 저주의 실현 과정과 같습니다. 마녀 키르케(태양신 헬리오스의 딸이자 마법과 약초에 능한 존재)의 섬에서 1년을 머물고, 세이렌의 유혹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를 돛대에 묶는 선택을 합니다. 세이렌이란 지나가는 선원들에게 그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지식과 이야기를 노래해 죽음으로 이끄는 존재입니다. 오디세우스가 귀를 막지 않고 스스로를 결박한 이유는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들어선 안 된다는 그 노래의 내용을 직접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제 눈에는 그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순간으로 읽혔습니다.
이어지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관문도 인상적입니다. 스킬라는 여섯 개의 머리로 선원 한 명씩 낚아채는 괴물이고, 카리브디스는 바닷물을 통째로 빨아들였다가 내뿜어 배 전체를 삼키는 소용돌이입니다. 여기서 진퇴양난이라는 개념, 즉 영어권에서 "between Scylla and Charybdis(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손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말로, 우리말의 진퇴양난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Merriam-Webster).
결국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 떼를 부하들이 잡아먹는 금기 위반으로 모든 동료를 잃고, 오디세우스는 홀로 님프 칼립소의 섬에 표류합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불멸의 삶을 제안하지만 그는 거절합니다. 원전에서 그는 낮이면 해변에 앉아 고향 이타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묘사됩니다. 불멸보다 가족이 있는 인간의 삶을 원했던 것입니다. 칼립소의 섬에서만 7년을 보낸 뒤, 여신 아테나의 중재로 제우스의 허락을 받아 마침내 귀환길에 오릅니다.
20년 만의 귀환, 페넬로페의 침대가 증명한 것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떠난 지 어느새 20년. 이타카에서는 그동안 다른 형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100명이 넘는 구혼자들이 왕궁을 점거하고 페넬로페에게 재혼을 압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오만한 인물인 안티노스는 영화에서 로버트 패틴슨이 맡았습니다.
페넬로페는 결코 무력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짜면 새 남편을 선택하겠다고 약속하고는, 낮에 짠 천을 밤마다 몰래 풀어버리는 방식으로 3년을 버텼습니다. 이 페넬로페의 직물, 즉 낮에 짜고 밤에 푸는 전략은 후대에 인내와 기지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하지만 결국 하녀의 밀고로 속임수가 들통나고 상황은 급박해집니다.
오디세우스는 이 시점에 이타카에 도착하지만, 곧바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테나의 도움으로 초라한 거지로 변장한 채 왕국 내 충성 세력을 확인하고,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집에서 마침내 아들 텔레마코스와 재회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전장을 떠날 때 텔레마코스는 갓 태어난 아기였으니, 두 사람은 사실상 처음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입장에서 이 장면이 가장 감정적으로 와닿은 대목이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공백을 만들었는지가 그 재회 하나로 압축되기 때문입니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에게 마지막 조건을 내겁니다. 오디세우스가 쓰던 활로 도끼 12개의 구멍 사이를 화살 하나로 통과시키는 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입니다. 구혼자들은 하나같이 시위도 제대로 걸지 못합니다.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가 나서 단숨에 시위를 걸고 12개의 도끼를 꿰뚫는 순간, 상황은 역전됩니다. 그 자리에서 안티노스를 쓰러뜨리고 정체를 밝힌 오디세우스는 아들과 함께 구혼자들을 모두 응징합니다.
그러나 페넬로페는 눈앞의 남자를 곧바로 믿지 않습니다. 20년 동안 오디세우스가 돌아왔다는 거짓 소문을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꺼낸 마지막 시험은 침대였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젊은 시절 살아있는 올리브 나무의 줄기를 직접 깎아 침대를 만들었습니다. 나무가 살아있으니 침대는 절대 방 밖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페넬로페가 "그 침대를 밖으로 옮겨라"라고 지시하자 오디세우스는 즉각 분노로 반응합니다. 그 분노를 본 순간 페넬로페는 확신합니다. 수많은 영웅담도 목격자의 증언도 아닌, 부부만 아는 기억 하나가 정체의 증거가 된 겁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이 전투도 기적도 아닌 침대 하나라는 사실이 오히려 훨씬 강하게 남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오디세이 개봉일과 제작비는 어떻게 되나요?
A. 국내 개봉일은 2026년 8월 5일입니다. 제작비는 약 2억 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3,500억 원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미국·캐나다 개봉 첫 주말에만 약 1억 2,45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Q. 그리스 신화를 몰라도 영화 오디세이를 즐길 수 있나요?
A. 기본 흐름은 따라갈 수 있지만, 오디세우스·페넬로페·텔레마코스의 관계와 트로이 전쟁의 배경, 폴리페모스·키르케·세이렌 같은 주요 등장 요소를 미리 알고 가면 몰입도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서사 구조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만큼 사전 지식이 관람 경험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Q.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중 어디에 나오나요?
A. 트로이 목마 에피소드는 엄밀히 말해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 본편이 아닌 후대 전승과 서사시 모음(에픽 사이클)에 주로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다만 오디세우스의 전략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화 <오디세이>에서는 전쟁의 기억으로 교차 서술되는 구조로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Q. 아이맥스 필름 촬영이 일반 디지털 촬영과 다른 이유가 뭔가요?
A. 아이맥스 필름(IMAX Film)이란 일반 35mm 필름보다 화면 크기가 약 10배 큰 70mm 포맷을 사용하는 촬영 방식으로, 해상도와 화면 비율에서 디지털 방식과 물리적으로 차원이 다른 질감을 구현합니다. 이번 <오디세이>는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작품 전체를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했으며, 사용된 필름만 약 210만 피트, 길이로는 약 640km에 달합니다.
결론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긴 여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영화의 거대한 스케일은 극장에서 보는 재미가 큰 요소입니다. 바다와 전투, 고대 세계의 풍경등을 대형 화면으로 경험하면 단순한 신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반대로 모든 관객에게 완벽하게 맞는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오디세이는 단순히 영웅이 괴물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수많은 것을 잃은 인간이 끝내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보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제가 이 서사를 다시 들여다보며 가장 새롭게 느낀 건, 오디세우스가 결코 도덕적으로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호기심과 오만으로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때로는 부하들에게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일방적인 희생을 결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멸의 삶 대신 늙고 죽을 인간의 삶을 선택해 끝내 집으로 돌아간 인물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3,500억 원과 640km 분량의 아이맥스 필름을 동원해 스크린 위에 재현하려는 것도 결국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특히 영화를 보고 낭 뒤에는 오디세우스보다 귀환이라는 단어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 https://www.youtube.com/watch?v=eLe1Vl-SM7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