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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제노사이드, 크메르 루주, 퓰리처)

<킬링필드, 크메르루주, 폴포트, 캄보디아, 제노사이드, 실화영화, 퓰리처상>
170만에서 250만 명.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사라진 숫자입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영화 한 편이 그 숫자 뒤에 있는 얼굴들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1984년 작 '킬링필드'는 지금 봐도 불편할 만큼 생생하고, 그래서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제노사이드를 기록한다는 것의 무게

영화는 뉴욕 타임스 기자 시드니 쉔버그와 캄보디아인 보조 기자 디스 프란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는 론 놀 정부군과 공산 무장세력 크메르 루주 사이의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미군의 캄보디아 폭격이 더해졌습니다.

이 폭격은 베트남전 당시 호치민 루트, 즉 북베트남의 보급로를 차단하겠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작전이었습니다. 여기서 호치민 루트란 북베트남이 캄보디아와 라오스 영토를 통해 남베트남으로 물자를 보내던 지하 보급망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폭격이 엄청난 수의 민간인 사상자를 낳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영화에서 닝 능 시가 초토화된 장면을 봤을 때, 저 폭격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솔직히 의심스러웠습니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미군의 무차별 폭격이 캄보디아 농촌 주민들의 반미 감정을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크메르 루주 세력을 키웠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출처: Yale University Cambodian Genocide Program). 쉽게 말해 외세의 개입이 오히려 더 극단적인 세력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지만, 닝 능 시 장면을 보고 나면 누구든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크메르 루주가 남긴 집단 학살의 기록

1975년 크메르 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공포는 본격화됩니다. 폴 포트가 주도한 크메르 루주 정권은 급진적 농업 공산주의를 내세워 화폐와 종교를 폐지하고, 도시 주민 전체를 집단 농장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교육받은 사람은 반동으로 규정해 처형했고, 심지어 안경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처형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역사학에서는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제노사이드란 특정 민족·종교·사회 집단을 조직적으로 말살하려는 행위로, 국제법상 가장 중대한 범죄 중 하나입니다. 유엔은 1948년 제노사이드 방지 협약을 채택하여 이를 국제법으로 금지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세계가 보는 앞에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출처: United Nations Human Rights Office).

영화에서 프란이 집단 농장을 탈출한 뒤 마주하는 장면, 즉 수없이 많은 시신이 묻혀 있는 킬링 필드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영화를 잠시 멈춰야 했습니다. 킬링 필드(Killing Fields)란 크메르 루주가 학살한 희생자들을 암매장한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현재 캄보디아 곳곳에 수백 곳이 확인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실제로 그 땅 아래에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영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이 캄보디아에 남긴 상흔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희생자 추정 규모: 170만~250만 명 (전체 인구의 약 25%)
  • 주요 처형 대상: 지식인, 교사, 의사, 공무원, 종교인
  • 집단 농장 강제 이주: 도시 전체 주민 대상
  • 어린이 분리 수용 및 사상 교육 강제 시행
  • 폴 포트 사망 연도: 1998년 (정식 재판 없이 사망)

폴 포트가 제대로 된 사법적 심판 없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캄보디아 생존자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볼 때 가장 분노가 치미는 순간은 가해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결말을 알게 될 때입니다.

퓰리처로 돌아온 기자와 남겨진 사람의 시간

영화의 또 다른 축은 시드니 쉔버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의 취재로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수상합니다. 퓰리처상이란 미국 저널리즘과 문학 분야의 최고 권위 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에 수여되는 상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수상 장면을 화려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시드니의 표정은 어둡고, 그는 프란을 찾고 있습니다.

프란을 지키려던 시도 중 하나가 위조 여권 제작이었습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기자들이 카메라 현상액으로 사진을 인화하려 했던 장면은 제가 직접 봐도 손에 땀이 났습니다. 당시 필름 현상이란 현상액과 정착액을 사용해 빛에 반응한 필름 이미지를 가시화하는 화학적 과정인데, 상태가 불량한 현상액으로는 선명한 사진을 얻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결국 여권 사진이 지워져 프란은 탈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디스 프란 역을 맡은 배우 행 응고르는 실제 킬링 필드 생존자입니다. 정식 연기 경력이 없었음에도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그의 연기를 다시 봤는데, 그가 집단 농장에서 견디는 장면들이 연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그 기억을 꺼내 연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무게가 화면을 통해서도 전달됩니다.

실제 디스 프란은 탈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타임스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킬링 필드 희생자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고, 2008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과 증언, 그리고 이 영화가 있었기에 캄보디아의 비극은 세계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총   평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상 납치, 강금 사건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40여 년전 작품인 킬링필드가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국가의 비극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체제 폭력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집요하게 응시합니다. 단순한 고전 영화가 아니라 위험이 일상으로 스며드는 세상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경고문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좋은 전쟁이란 없고, 나쁜 평화란 없다"는 말처럼 전쟁은 인간의 야만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영화 <킬링 필드>는 한 개인의 숭고한 생존 본능과 우정을 노래하는 동시에, 거대 담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 폭력의 추악함을 증명합니다.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받을 때, 그 사건은 조금씩 잊혀집니다. '킬링필드'는 불편하게 볼 필요가 있는 영화입니다. 시드니와 프란 두 사람의 재회로 끝나는 장면에서 존 레논의 '이매진'이 흘러나올 때, 저는 그 노래가 그토록 슬프게 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영화 <킬링필드>는 1985년 대한극장에서 개봉해 서울 관객 93만 명을 동원한 작품으로, 1980년대 역대 수입 외화 흥행 1위를 기록했습니다.
처음 영화를 보셨을때 조금 낮설게 느껴지셨다면, 오늘 밤 다시한번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4lNBj\_JeZ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