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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 (생존본능, 고려장, 황금종려상)
<나라야마 부시코, 이마무라 쇼헤이, 황금종려상, 고려장, 일본영화, 칸영화제, 생존본능>
198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가 일본이 감추고 싶었던 치부를 정면으로 들이민다면, 그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불편함을 감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이 영화가 위대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세기 오지 마을, 왜 이토록 잔인했을까
70세가 되면 아들이 어머니를 산에 버려야 한다는 전통, 그 자체만 보면 그냥 잔인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전통이 무섭도록 논리적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일본의 깊은 산간 오지입니다. 정부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서 마을은 철저하게 자급자족으로 생존해야 했습니다. 식량은 한정되어 있고, 겨울은 혹독하게 길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마을이 선택한 것은 인구 조절이었습니다.
여기서 인구 조절이란 단순히 출산을 제한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영화는 갓난아기를 죽이고, 70세 노인을 산에 버리고, 농작물을 훔친 일가족을 생매장하는 장면을 거리낌 없이 보여줍니다. 인구생태학(Population Ecology) 관점에서 보면, 이는 특정 환경의 수용 가능 인구 한계, 즉 환경 수용력(Carrying Capacity)을 초과하지 않기 위한 극단적인 자기 조절 메커니즘입니다. 쉽게 말해 땅이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의 한계를 넘지 않으려고 공동체가 스스로 만들어낸 잔혹한 법도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이 전통이 악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공동체 전체가 다음 계절을 버티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섬뜩했습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생존 방식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노인 유기: 70세 이상 고령자는 나라야마 산에 버려 식량 소비를 줄임
- 영아 살해: 남아가 태어나면 죽여 장기적인 인구 증가를 억제
- 절도 엄벌: 농작물을 훔친 일가족은 생매장하여 공동체 식량 안보를 보호
- 결혼 제한: 장남만 결혼할 수 있어 가구 내 번식을 통제
이 네 가지 불문율이 맞물려 마을의 인구와 식량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영화는 이것을 고발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냥 보여줍니다. 그 담담함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어머니가 멀쩡한 이를 스스로 부러뜨린 이유
이 영화에서 저를 가장 오래 붙잡은 장면은 어머니가 스스로 앞니를 깨뜨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왜 멀쩡한 이를 굳이 부러뜨리는 걸까 싶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행동이 얼마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인지 알게 됩니다.
마을의 전통에서 이가 빠진다는 것은 단순한 노화의 표시가 아닙니다. 음식을 씹을 수 없다는 것, 즉 더 이상 식량을 소비할 자격이 없다는 상징적 선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을 산에 버리지 못하고 마음이 약해질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늙었음을 증명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입니다. 이를 희생의 서사학(Narrative of Sacrifice)으로 해석하면, 이는 개인이 공동체의 논리 앞에서 자기 소멸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행위입니다. 쉽게 말해 "나는 이미 준비됐으니 더 이상 망설이지 말라"는 아들을 향한 메시지였습니다.
장남이 어머니를 등에 업고 나라야마 산을 오르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이 전통을 거부하는 눈물이 아니라 전통을 따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터지는 인간의 감정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충격 묘사를 넘어선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해 나가는 짐승과 같은 존재로 묘사됩니다. 성욕, 번식, 음식, 배설이 날것 그대로 화면에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에 뱀이 짝짓기를 하고 제비가 둥지를 틀고 겨울이 오면 들짐승이 죽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리는 이 연출 방식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특유의 인류학적 시선(Anthropological Perspective)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류학적 시선이란 인간을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관찰 방식으로, 이 감독이 평생에 걸쳐 고집한 연출 철학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작품으로 198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했고, 이후 우나기로 다시 한번 황금종려상을 받아 세계에서 단 8명뿐인 2회 수상 감독 반열에 올랐습니다(출처: 칸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그 이름 옆에 놓인 이 영화가 어떤 무게를 갖는지,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고려장은 한국의 전통이 아니다
혹시 고려장이 고려시대 한국에 실제로 존재했던 풍습이라고 알고 계신가요?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제대로 찾아봤습니다.
나라야마 부시코의 노인 유기 풍습은 고려장과 자주 묶여서 언급되는데, 실제로는 고려시대 한국의 전통이 아닙니다. 이는 과거 소수 일본 지방에 존재했던 풍습이며,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한국의 역사를 깎아내리기 위해 마치 한국의 전통인 것처럼 지어낸 거짓 선전(Propaganda)이었습니다. 프로파간다란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하여 대중의 인식을 유도하는 심리전 기법을 말합니다. 국내 역사 학계에서는 고려장이 한국 역사에 실재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린 것입니다. 일본이 감추고 싶은 자국의 치부를 스스로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예술 행위를 넘어서는 역사적 고발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 영화를 단순히 잔인한 예술 영화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왜곡이라는 맥락 안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의 헌신도 이 영화의 무게를 더합니다. 어머니 역을 맡은 사카모토 스미코는 연기를 위해 실제로 앞니 4개를 부러뜨렸고, 장남 역 배우는 40kg의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가수 출신인 사카모토 스미코가 당시 40대 초반의 나이에 이토록 노역 연기를 펼쳤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얼마나 진지하게 만들어졌는지를 방증합니다.
총 평
우리가 어릴 적에 즐겨 듣고 보던 전래동화 같은 교훈과 해피엔딩은 결단코 없습니다. 냉혹한 현실이 기본값인 냉정한 세상에선 생존을 위한 선택의 문제와 그에 따른 딜레마가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자식이나 부모 누군가의 일방적 선택이 아니라, 둘 모두 선택권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들은 자신과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 부모를 사지로 내몰 것인가, 부모는 정해진 죽음을 스스로 기꺼이 선택할 것인가. 이토록 잔인한 상황에서 더욱 비참한 것은 자신의 운명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이고, 영화는 그러한 사실을 고려장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의 '고려장'이라고 잘못 알려진 풍습을 떠올리게 하는 노인 유기 장면은 본작의 하일라이트였습니다. 늙은 부모를 엎고 높은 산을 오르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고, 해골이 가득한 곳에 앉아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은 공포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였지만 리스케라는 개그 캐릭터가 익살스러운 장면을 자주 만들어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정욕을 다스리지 못하고 옆집의 암캐를 탐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 역겨웠습니다.
성과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주제를 다루었기에 흡인력은 아주 높았지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나 영상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 고전 영화에 관심이 있고 본인의 비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감상을 권하고 싶습니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불편하게 봐야 제대로 보이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인간이 문명 이전에 어떤 존재였는지, 공동체의 생존이 개인의 삶보다 앞서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질문들이 오래 남았습니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에서도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다면, 가급적 빈 마음으로 앉아서 한 번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불편함을 견디고 나면 남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