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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인, 부림사건, 용공조작, 국가보안법, 송강호, 노무현, 한국영화

     

    영화 한 편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걸린 적이 없었습니다. '변호인'을 처음 봤을 때, 1981년 부산에서 평범한 대학생들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렸다는 사실이 도저히 실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화였고, 오히려 그래서 더 무겁게 얹혔습니다. 부림사건의 실체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찬찬히 짚어봤습니다.



    부림사건, 합법적인 책이 불온서적이 된 날

    제가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잡혀갔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981년에 불온서적으로 지목된 목록을 보면, 『역사란 무엇인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고등학교 필독서였고, 당시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부림사건이란 1981년 전두환·노태우 군부 정권 시절 벌어진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입니다. 여기서 용공조작이란 국가 권력이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공산주의 동조자로 허위 규정하여 탄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피해자들은 독서 모임을 가졌던 평범한 시민들이었는데, 이들이 읽은 책은 출판물 간행법상 완벽하게 합법 유통된 서적이었습니다. 출판물 간행법이란 출판물의 발행과 유통을 규율하는 법률로, 이 기준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국가보안법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란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인데, 군부 정권 시절에는 체제 비판적인 내용이 조금이라도 담긴 서적이나 모임을 광범위하게 처벌하는 도구로 악용되었습니다. 하위 법령이 허용한 것을 상위 규범이 일거에 뒤집어버린 셈입니다. 이 구조가 저는 법치주의 자체가 작동을 멈춘 상황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당시 언론은 "대학에 잠입한 빨갱이들"식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만, 그 시대에 살았다면 저도 뉴스를 그대로 믿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변호사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나서는 순간 자신도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이 공포가 바로 용공조작이 가진 진짜 힘이었다고 봅니다.

    피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법적으로 구제받았습니다. 2009년 재심에서 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2014년에는 완전한 무죄 판결로 복권되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하지만 당시 가해자들 중 실질적인 책임을 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영화보다 이 사실이 훨씬 더 씁쓸하게 남았습니다.

    • 피의자들이 읽은 책은 출판물 간행법상 합법 유통 서적이었음
    • 영장 없는 체포, 혐의 불명확한 구금, 고문을 통한 자백 강요가 자행됨
    • 국가보안법이 하위 법령을 전방위 억압하며 법치주의 자체가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짐
    • 군의관이 법정에서 취조 중 응급처치를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함
    • 2014년 완전 무죄 판결, 그러나 가해자 처벌은 전무
    요약: 부림사건은 합법적인 독서와 모임을 국가보안법으로 뒤집은 용공조작 사건으로, 피해자들은 30년 뒤에야 무죄를 받았지만 가해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성찰 없는 신념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영화에서 제가 가장 소름 돋은 장면은 "국가란 무엇입니까"라고 외치는 법정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차동영 검사가 자신의 행동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굳게 믿는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얼굴에서 묘하게 설득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신념 있어 보이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신념 있어 보이기만 해도 일단 혹하게 된다는 겁니다.

    감독은 이 지점을 굉장히 날카롭게 짚습니다. 성찰 없는 신념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결국 타인을 억압하는 도구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찰이란 자신의 행동과 판단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옳고 그름을 스스로 따지는 과정을 뜻합니다. 감독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 꼽은 개념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의심이란 맹목적 추종이 아닌 이유를 따지는 습관인데, 영화는 그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송우석 변호사는 처음부터 정의를 외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법고시 합격 후 판사를 거쳐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말하자면 돈 잘 버는 직업인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설정이 오히려 이야기를 더 믿게 만듭니다. 처음부터 영웅인 사람의 서사는 감동은 주지만 내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가 재판에 뛰어든 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국밥집 아들이 고문을 당한 채 끌려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그의 원칙을 건드렸습니다.

    법정에서 그가 펼친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강했습니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불온서적이라면, 이 책을 서울대 권장도서로 지정한 대한민국 최고 학부도 반국가 기관이 되는 셈이냐고 물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판이었다면 당연히 먹혔을 논리입니다. 문제는 애초에 상식이 통하는 판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그래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원칙주의자가 시스템이 왜곡된 상황에서도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한 장면이었습니다(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에는 이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는 감독의 말도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살아 계실 때 만들면 용비어천가, 즉 권력자를 찬양하는 일방적 서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제작 맥락을 알고 보는 영화는 같은 장면도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송강호 배우도 캐스팅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를 잘 재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했는데, 그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 것은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고 합니다. 배우 한 명의 결단이 독립영화 규모의 작품을 상업영화로 전환시킨 드문 사례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봤더니, 송강호의 표정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요약: 성찰 없는 신념이 어떻게 억압의 도구가 되는지, 영화는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조용하지만 강하게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림사건은 실제로 어떻게 끝났나요?

    A. 피해자들은 2009년 재심에서 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2014년에는 완전한 무죄 판결로 복권되었습니다. 다만 당시 사건을 주도한 가해자들 가운데 실질적인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갈리는 편입니다.

     

    Q.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은 실존 인물인가요?

    A. 송우석은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한 허구의 캐릭터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제 행적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영화는 부림사건의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다만 영화적 재구성이 포함된 만큼, 사건의 세부 내용은 실제 기록과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국가보안법은 지금도 존재하나요?

    A. 네, 국가보안법은 현재도 유효한 법률입니다. 다만 적용 범위와 해석을 둘러싸고 오랜 기간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폐지해야 한다는 시각과 안보 현실상 필요하다는 시각이 공존하며,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민감한 주제입니다.

     

    Q. 부림사건 관련 자료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나요?

    A.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아카이브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관련 기록과 판결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실제 기록을 조금이라도 찾아보고 보시면, 같은 장면도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제가 그 순서로 봤더니 법정 장면에서 멈춰 서게 되더라고요.

     

    결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 무게감이 걷히지 않았습니다.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라는 대사처럼, 지금 당장 이길 수 없더라도 살아 있는 쪽이 결국 무언가를 바꾼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강하게 전달합니다.

    성찰 없는 신념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법치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 평범한 시민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를 이 영화만큼 실감나게 보여준 작품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인'을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부림사건의 실제 기록을 조금 찾아본 뒤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그 순서로 봤더니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ekugpEQSx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