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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막달레나 세탁소, 심리 묘사, 원작 비교)

<이처럼 사소한 것들, 아일랜드 영화, 막달레나 세탁소, 클레어 키건, 영화 리뷰, 실화 영화, 가톨릭 교회>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크리스마스 무렵에 개봉한 잔잔한 외국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가 70년 넘게 감춰온 실화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조용한 양심이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입니다.

막달레나 세탁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제가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ries)라는 이름 자체를 몰랐습니다. 여기서 막달레나 세탁소란, 19세기 중반부터 1996년까지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강제 노역 시설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미혼모나 성폭행 피해자, 어린 소녀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수용한 뒤 무보수로 세탁 노역을 시킨 곳입니다.

영화의 배경인 1980년대 중반 아일랜드는 당시 유럽 최빈국 수준이었습니다. 19세기 대기근(Great Famine)으로 수백만 명이 해외로 떠나 인구가 반토막 난 이후, 국가 경제가 무너진 자리를 가톨릭 교회가 채웠습니다. 여기서 대기근이란, 1845년부터 1852년 사이 아일랜드를 강타한 감자 역병으로 약 100만 명이 사망하고 100만 명 이상이 이민을 떠난 역사적 재난입니다. 이 사건 이후 교회는 사실상 정부와 맞먹는 사회적 권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일랜드 정부의 공식 조사 보고서인 맥알리스 보고서(McAleese Report)에 따르면, 막달레나 세탁소에는 약 1만 명의 여성이 수용되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가족과 강제로 분리된 채 수년간 시설에 갇혀 있었습니다(출처: 아일랜드 법무부). 아이들은 강제로 해외 입양에 보내졌고, 시설에서 사망한 이들은 교회 땅에 암매장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종교 기관이 국가 공권력보다 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사회에서, 이런 일이 70년 넘게 지속됐다는 것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02년에 개봉한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를 찾아 함께 봤는데, 그제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왜 저렇게 조용하고 무거운 방식을 택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이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면, 영화 속 빌 펄롱이 왜 그렇게 고뇌하는지가 훨씬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그는 진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 묘사와 원작 소설 비교, 어느 쪽이 더 깊은가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소설이 얇아서 가볍게 볼까 했는데, 오히려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받았던 감정이 소설의 문장에 더해지면서 충격이 두 배로 왔습니다.

소설의 가장 큰 힘은 내면 독백(interior monologue)에 있습니다. 여기서 내면 독백이란, 인물의 말이나 행동 없이 의식의 흐름을 직접 서술하는 문학적 기법으로, 독자가 인물의 심리를 내부에서 경험하게 만듭니다. 클레어 키건의 문장은 빌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그의 감각과 침묵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에서 빌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는 이 내면 독백을 거의 대사 없이 표정과 시선으로 재현했습니다. 여기서 서브텍스트(subtext)가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서브텍스트란 대사나 행동의 표면 아래 숨겨진 감정과 의도를 말하는 영화적 개념으로, 이 영화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연출 전략입니다.

영화와 소설 각각을 경험한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두 작품은 경쟁 관계가 아닙니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빌의 침묵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으면 킬리언 머피의 얼굴이 문장에 겹쳐지면서 묘한 입체감이 생깁니다. 저는 후자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순서가 더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빌의 아내 아일린이 하는 말을 두고, 그녀가 차갑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렇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아일린의 냉정함은 악의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의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방어 기제란 심리적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 반응을 말합니다. 그러니 빌의 연민과 아일린의 냉정함, 둘 다 틀리지 않았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빌이 수녀원 지하에서 소녀를 발견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그 이후, 원장 수녀에게 돈을 받고 조용히 미사를 드리러 가는 신부의 뒷모습입니다. 정의로운 길이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그 길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 그 침묵이 70년을 지탱했다는 것을 그 한 장면이 다 말해줬습니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핵심 질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옳은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죄인가, 아니면 인간의 한계인가
  • 가족의 안위를 위해 침묵을 선택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가
  • 한 사람의 사소한 용기가 실제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가

아일랜드 정부는 2013년 공식 사과를 했고, 피해자 배상 기금도 마련됐습니다(출처: 아일랜드 정부 공식 사이트). 하지만 당사자인 교회 측은 끝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빌이 결국 선택한 행동이 영화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고 나면, 이 역사적 사실이 더 쓸쓸하게 다가옵니다.

총  평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보고 나서 결론을 주지 않는 영화입니다. 빌이 옳은지, 아일린이 현실적인지, 침묵한 사람들이 비겁한지, 저도 다 정해진 답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제목이 말하는 친절, 다정, 관용이 결국은 누군가가 먼저 감수해야 가능한 것이라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잔잔하게 볼 영화를 찾는다면, 원작 소설과 함께 두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한 줄 평은 이겁니다.
"보통의 마음이 사소한 용기가 되었을 때 나오는 따뜻함의 결실."
영화는 일상의 무게 속에서 놓쳐버리기 쉬운 사소한 것들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한 번쯤 감상해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대개의 경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항상 실망했었습니다. 영화가 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서인데요. 이번 경우는 달랐습니다. 책의 것을 고스란히 다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출도 좋고 주인공 빌 펄롱 배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내적갈등 연기도 매우 좋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관람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0Sv4vDY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