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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하트, 윌리엄월레스, 스코틀랜드독립, 역사왜곡, 스털링전투, 배넉번전투, 멜깁슨

브레이브하트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진심으로 울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 역사를 찾아보고는 꽤 당황했습니다. 1995년 개봉 당시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수상한 이 영화가, 정작 역사적 고증 면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을 뒤집어 놓았는지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영화로서의 완성도와 역사적 정확성은 별개라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실감했습니다.
영화가 지운 다리 — 스털링 전투의 실제 모습
브레이브하트에서 가장 압도적인 장면은 단연 스털링 전투입니다. 광활한 개활지, 그러니까 주변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넓고 평평한 땅에서 스코틀랜드 군이 긴 창을 들고 잉글랜드 기병대를 정면으로 막아내는 그 장면 말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 스케일에 압도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스털링 전투는 개활지가 아니라 포스 강의 좁은 스털링 다리 위에서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윌리엄 월레스는 광대한 평야에서 정면 돌파한 게 아니라, 대규모 잉글랜드 병력이 좁은 다리를 건너느라 대오(隊伍)가 흐트러지는 그 찰나를 정확히 노렸습니다. 여기서 대오란 군대가 전투를 위해 갖추는 대형과 질서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무너지면 아무리 수가 많아도 통제력을 잃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적 스펙타클을 위해 역사를 희생시킨 가장 뚜렷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좁은 다리에서의 전투를 스크린으로 구현하기란 영화적으로 어렵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월레스의 진짜 전술 천재성은 평원에서의 정면 승부가 아니라, 지형을 읽는 냉철한 계산에 있었습니다. 영화는 그 부분을 통째로 걷어낸 셈입니다.
다양한 시각이 있기는 합니다. 역사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사실 전달보다 감동 전달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그런데 저는 실제 이야기가 더 극적일 수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좁은 다리, 반쯤 건넌 잉글랜드 대군, 그 틈을 가르는 기습. 오히려 이쪽이 더 영화적이지 않았을까요.
역사왜곡 — 장창병 전술과 배넉번의 진실
브레이브하트를 보면 윌리엄 월레스가 이끄는 장창병(長槍兵) 부대가 잉글랜드 기마병을 막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장창병이란 긴 창을 들고 밀집 대형을 이루어 싸우는 보병 부대를 의미하며, 말을 탄 기병의 돌격 속도를 정면으로 꺾는 데 특화된 병종입니다. 이 장면이 주는 시각적 쾌감은 상당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장창병이 잉글랜드 기마병을 결정적으로 무력화시킨 전투는 월레스의 스털링 전투가 아니라 로버트 브루스가 이끈 배넉번 전투(1314년)였습니다(출처: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쉽게 말해, 영화는 서로 다른 두 전투의 핵심 요소를 뒤섞어 하나의 장면으로 만든 셈입니다.
배넉번 전투는 에드워드 2세의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로버트 브루스가 대승을 거둔 전투로, 스코틀랜드 독립의 실질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입니다. 브레이브하트에서 우유부단한 귀족으로만 그려진 로버트 브루스가 실제로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완성한 주인공이었다는 점에서, 영화의 역사 왜곡은 단순히 전투 묘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브레이브하트가 바꿔 놓은 것들
영화가 각색하거나 뒤섞은 역사적 요소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스털링 전투: 개활지 정면 대결 → 실제는 좁은 다리를 이용한 기습 전술
- 장창병 기병 격파: 월레스의 전과로 묘사 → 실제는 배넉번 전투에서 로버트 브루스가 달성
- 킬트(kilt) 착용: 영화 속 스코틀랜드군의 상징 →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후대 의상
- 로버트 브루스: 우유부단한 귀족으로 묘사 → 실제 스코틀랜드 독립을 완성한 인물
킬트, 그러니까 스코틀랜드 전통 격자무늬 치마 형태의 복식은 실제로 14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렇게 상징적으로 쓰인 의상이 아예 그 시대의 것이 아니었다는 게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영화 속 병사들은 실제로는 제대로 된 갑옷을 착용하고 싸웠습니다.
이사벨라 — 10살 소녀를 연인으로 만든 로맨스
소피 마르소가 연기한 프랑스 공주 이사벨라와 윌리엄 월레스의 로맨스는 많은 관객의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입니다. 저도 처음 볼 때는 그 장면들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실제 생몰 연도를 확인하고는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월레스가 처형당한 1305년, 이사벨라는 겨우 10살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연인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적 구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사벨라는 12살에 잉글랜드 왕세자, 훗날의 에드워드 2세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이 허구에 대해 BBC 히스토리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상영 반대 운동까지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출처: BBC History).
반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역사적 정확성보다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서사가 더 강력하게 작동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데, 저는 그 부분이 영화의 힘이기도 하고 동시에 위험성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조명하지 않은 이사벨라의 실제 이야기가 훨씬 더 드라마틱합니다. 남편 에드워드 2세가 총신(寵臣)들을 편애하며 왕권을 방만하게 행사하자, 이사벨라는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건너갑니다. 여기서 총신이란 군주의 각별한 총애를 받는 신하를 뜻하는데, 당시 에드워드 2세의 편애 문제는 귀족들의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이후 이사벨라는 로저 모티머와 손을 잡고 군대를 조직해 잉글랜드 본토를 침공했으며, 1326년 남편을 폐위시키고 아들 에드워드 3세를 왕위에 올렸습니다. 영화 속 수동적인 왕비가 아니라, 직접 왕을 끌어내린 인물이었습니다.
역사와 예술 사이 — 브레이브하트가 남긴 것
역사적 정확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브레이브하트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전투 장면의 리얼리즘 때문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쟁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근접 전투(近接戰鬪)의 혼돈과 폭력성을 정면으로 담아냈습니다. 근접 전투란 창·검·도끼 등을 사용해 적과 직접 맞붙는 백병전 방식을 의미하는데, 멜 깁슨은 이걸 영화적 미화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한국 개봉 당시에는 지나치게 많은 폭력 장면 때문에 편집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잘려나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제가 오리지널 버전과 국내 개봉판을 비교해 봤을 때 체감 차이가 꽤 있었는데, 그만큼 멜 깁슨이 의도한 전쟁의 참혹함이 원본에는 더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저는 멜 깁슨이 이후 연출한 핵소 고지와 아포칼립토도 모두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핵소 고지는 폭력의 참혹함과 신앙의 순수함을 정면으로 충돌시키며 전쟁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브레이브하트에서 시작된 그의 연출 방식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압도적인 스케일에 빠져들었지만, 결국 이 영화가 건드리는 건 각 나라가 품고 있는 역사적 상처와 정체성의 문제였습니다. 스코틀랜드는 1328년 에든버러 조약으로 독립을 공식화했지만, 1603년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을 겸하게 되면서 두 나라는 다시 묶였고, 1707년 연합법으로 완전히 병합되어 오늘날의 연합왕국이 됩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스코틀랜드 독립 여론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역사의 상처는 그렇게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이런 영화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브레이브하트 스털링 전투가 왜 실제와 다른가요?
A. 실제 스털링 전투는 영화처럼 광활한 개활지가 아니라 좁은 스털링 다리 위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월레스는 대규모 잉글랜드 군이 좁은 다리를 건너며 대오가 무너지는 순간을 노리는 지형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영화는 시각적 스펙타클을 위해 이 핵심 전술 배경을 통째로 교체했습니다.
Q. 브레이브하트에서 이사벨라와 월레스 로맨스가 사실인가요?
A. 완전한 허구입니다. 윌리엄 월레스가 처형된 1305년, 이사벨라는 겨우 10살이었으며 두 사람이 만났다는 역사적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설정은 BBC 히스토리가 지적했듯 당시 잉글랜드에서 상영 반대 운동까지 일어날 만큼 논란이 됐습니다.
Q. 브레이브하트 킬트는 실제 당시 복식인가요?
A. 아닙니다. 킬트는 14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후대의 복식입니다. 실제 당시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갑옷을 착용하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킬트는 영화가 스코틀랜드의 정체성을 시각화하기 위해 선택한 상징적 장치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Q. 브레이브하트에서 로버트 브루스는 왜 부정적으로 그려졌나요?
A. 영화는 월레스를 단독 영웅으로 집중 조명하기 위해 브루스를 우유부단한 귀족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로버트 브루스는 1314년 배넉번 전투에서 잉글랜드 대군을 격파하고 스코틀랜드 독립을 완성한 인물입니다. 넷플릭스의 아웃로 킹이 이 부분을 다루고 있어 함께 보면 균형 잡힌 시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론
브레이브하트는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영화입니다. 그 전제를 깔고 보면 이 작품이 왜 지금도 회자되는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실제 역사를 먼저 파악하고 나서 영화를 보면 무엇이 선택되고 무엇이 버려졌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비교를 통해 역사 자체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 그리고 우리나라가 겪어온 역사를 떠올리면 이런 영화는 단순한 오락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역사의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고, 또 잊혀서도 안 됩니다. 브레이브하트를 보셨다면, 이번 기회에 배넉번 전투나 로버트 브루스의 실제 이야기도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영화가 놓친 부분이 오히려 더 극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