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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하트 역사왜곡 (고증오류, 실제역사, 멜깁슨)
영화 한 편이 한 나라의 독립 역사를 완전히 다르게 각인시킬 수 있을까요? 1995년 개봉한 멜 깁슨의 '브레이브하트'는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윌리엄 월레스의 이야기를 다룬 대작입니다.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역사적 고증은 엉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데, 나중에 실제 역사를 찾아보고는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가 왜곡한 스코틀랜드 전투의 실제 모습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스털링 전투입니다. 광활한 평원에서 스코틀랜드군이 긴 창을 들고 잉글랜드 기병대를 막아내는 장면은 지금 봐도 압권이죠. 그런데 실제 스털링 전투는 개활지가 아니라 스털링 다리에서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여기서 개활지란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합니다.
윌리엄 월레스는 좁은 다리라는 지형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잉글랜드군을 격파했습니다. 대규모 병력이 좁은 다리를 건너느라 대오가 흐트러진 틈을 노린 전술이었죠. 제 생각에 이건 영화적 스펙타클을 위해 역사를 희생시킨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영화 속 장창병(長槍兵) 전술의 위치 바꿔치기입니다. 여기서 장창병이란 긴 창을 들고 싸우는 보병 부대를 의미하는데, 기병대의 돌격을 막는 데 특화된 병종입니다. 실제로 장창병이 잉글랜드 기마병을 무력화시킨 전투는 배넉번 전투였습니다([출처: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배넉번 전투는 1314년 로버트 브루스가 에드워드 2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결정적 전투로, 스코틀랜드 독립의 전환점이 된 역사적 사건이죠.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 윌리엄 월레스가 자유를 외치며 처형당한 비장한 순간 이후, 역사는 사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지독하고 처절한 전쟁이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아웃로 킹'은 1304년, 윌리엄 월레스의 죽음으로 스코틀랜드의 희망이 꺾인 절망의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월레스가 남긴 불씨를 이어받아 실제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완성한 로버트 더 브루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브레이브하트'에서 우유부단한 귀족으로 그려졌던 그가 어떻게 굴욕적인 항복을 딛고 진흙탕을 구르며 진짜 왕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말하자면 '브레이브하트'의 현실판 시퀄입니다.
솔직히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이런 디테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알고 나니 영화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각색했는지 새삼 놀랍더군요
10살 소녀와 사랑에 빠진 영웅? 영화 속 허구
영화에서 소피 마르소가 연기한 프랑스 공주 이사벨라와 윌리엄 월레스의 로맨스는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저 역시 그 장면들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게 완전한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는 허탈했습니다.
실제로 월레스가 처형당했을 때 이사벨라는 겨우 10살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적도, 사랑한 적도 없죠. 이사벨라는 12살에 잉글랜드로 시집을 갔으니, 영화 속 설정은 시간적으로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이런 역사 왜곡에 대해 잉글랜드에서는 개봉 당시 상영 반대 운동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출처: BBC 히스토리).
반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역사적 정확성보다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서사가 더 강력했던 거죠.
영화는 이사벨라를 단순히 아름다운 왕비로만 그렸지만, 실제 그녀는 훨씬 더 강인한 인물이었습니다. 남편 에드워드 2세가 동성 애인들을 총애하자, 이사벨라는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로저 모티머와 손을 잡고 군대를 조직해 잉글랜드 본토를 침공했죠. 1326년 그녀는 남편을 폐위시키고 아들 에드워드 3세를 왕위에 올렸습니다.
제 경험상 역사 영화를 볼 때는 이런 뒷이야기를 알고 보는 게 훨씬 재미있습니다. 영화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렸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멜 깁슨이 만든 전쟁 영화의 새로운 기준
브레이브하트가 영화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전투 장면의 리얼리즘입니다. 이전까지 전쟁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체 절단, 유혈 낭자한 근접 전투를 스크린에 그대로 담아냈죠. 멜 깁슨은 '매드맥스' 시리즈로 할리우드 스타로 급부상했고, '리썰 웨펀' 시리즈로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연기만큼이나 연출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브레이브하트에서는 감독, 주연, 제작을 모두 맡으며 자신의 비전을 완벽하게 구현했죠. 한국 개봉 당시에는 잔인한 장면이 대부분 잘려나갔는데, 편집 스태프들이 너무 많은 폭력 장면 때문에 지쳐서 패닉에 빠졌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멜 깁슨이 이후 연출한 '핵소 고지', '아포칼립토' 같은 작품들도 모두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핵소 고지는 폭력의 참혹함과 신앙의 순수함을 동시에 담아낸 걸작이죠.
총 평
역사적 정확성에는 논란이 많지만,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화 속 스코틀랜드군이 입은 킬트(kilt)는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의상이고, 실제로는 제대로 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증 오류에도 불구하고 브레이브하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작입니다.
현재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합쳐진 연합국가 형태입니다.
특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707년 연합법에 의해 하나의 국가로 합쳐졌습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국민의 다수는 300년이 흐른 지금도 잉글랜드와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328년 에드워드 3세 시대에 에든버러 조약이 체결되면서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공식화되었습니다. 하지만 1603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하며 두 나라는 다시 연합했고, 1707년에는 완전히 병합되어 오늘날의 연합 왕국이 되었죠.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역사와 예술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완벽한 고증보다 강렬한 감동이 때로는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니까요. 다만 영화를 본 후에는 실제 역사도 꼭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 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있고,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