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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사 요청 (이수정, 언더우드, 마가복음)
솔직히 저는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역사를 단순하게만 생각했습니다. 외국 선교사들이 먼저 찾아와서 일방적으로 전파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한국인이 먼저 선교사를 간절히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1883년 요코하마에서 미국으로 전송된 한 통의 편지가 한국 선교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고, 그 편지를 쓴 사람이 바로 이수정(1843~?)이라는 조선인이었습니다. 당시 은둔의 나라였던 조선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복음을 요청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이수정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면 한국 기독교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수정, 조선 최초로 선교사를 요청하다
188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미국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송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이수정은 미국의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우리의 조국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아직 참 하나님의 길을 모르고 있으며, 이방인으로 살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당시 미국 교계와 선교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발적 선교 요청(Voluntary Mission Request)'이라는 개념입니다. 자발적 선교 요청이란 선교 대상국이 먼저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는 것으로, 세계 선교 역사에서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선교사들이 먼저 찾아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계기로 감리교 해외선교부에는 가우처 박사가 2,000달러를, 장로교 선교부에는 맥 윌리엄스가 5,000달러를 기부했습니다. 1880년대 당시 2,000달러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5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500만 원 정도의 거금입니다. 이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도 조선 선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특히 놀란 것은 이수정이라는 한 개인의 간절한 호소가 실제로 역사를 바꿨다는 점입니다. 개인이 쓴 편지 한 통이 수많은 선교사를 조선으로 파송하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신념과 행동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수정은 임오군란(1882년) 당시 명성황후를 구출한 공로로 고종 황제로부터 일본 유학 기회를 얻었습니다. 일본에서 서양 문물을 접한 그는 조선의 근대화와 복음 전파가 절실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직접 선교사 요청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조선이 아닌 일본에서 이런 결단을 내렸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언더우드, 이수정의 편지에 응답하다
이수정의 호소 편지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년)입니다. 당시 24세였던 언더우드는 선교지를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기독교 잡지에 실린 이수정의 편지를 보고 조선 선교에 대한 소명(Calling)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소명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명이나 부르심을 의미하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언더우드는 자신의 선교사 지원 서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저의 심장은 이 호소문에 의해 꿈틀댔으며 어떤 결과가 이루어질지 조마조마하며 주시해 왔습니다."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은 단순한 직업적 선택이 아니라, 깊은 영적 확신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줍니다.
1885년, 이수정과 언더우드의 극적인 만남이 요코하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년 전 절박한 심정으로 편지를 보냈던 이수정이 마침내 조선으로 파송된 선교사를 직접 맞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사적 순간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간절함과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더우드는 '한국 선교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제물포항에 도착했고, 이후 31년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하는 등 한국 근대 교육과 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언더우드의 사역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885년 제물포항 도착, 한국 선교 시작
- 1886년 고아원 설립 및 의료 선교 활동
- 1915년 연희전문학교 초대 교장 취임
- 1916년 한국에서 순직
마가복음언해, 조선 선교의 초석이 되다
1885년 제물포항에 도착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손에는 이미 한글로 번역된 마가복음서가 들려 있었습니다. 이는 선교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선교사들이 현지에 도착한 후 언어를 배우고 성경을 번역하는 데 수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 한글 성경이 바로 '마가복음언해(馬可福音諺解)'입니다. 언해란 한문을 우리말로 풀이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일반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한 문헌을 의미합니다. 이수정은 미국에 선교사 요청 편지를 보낸 후, 한반도에 복음의 문이 열릴 때를 대비해 일본에서 활동하던 헨리 루미스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성경 번역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수정이 완성한 성경 번역본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첫째는 '현토 한한 신약성서(懸吐 漢韓 新約聖書)'로, 한자 성경에 조선어로 토를 다는 방식입니다. 둘째는 순수 한글 번역본인 '마가복음언해'입니다. 현토본은 한문 교육을 받은 양반층을 대상으로 했고, 언해본은 한글을 아는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수정이 단순히 선교사를 요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실질적인 준비까지 완료했다는 점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려면 그 복음을 담은 성경이 필요하고, 성경이 읽히려면 현지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반도에 정식으로 복음이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그 밑바탕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Divine Providence)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여기서 섭리란 하나님이 역사와 인간의 삶을 미리 계획하고 인도한다는 기독교 신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정리하자면, 한국 선교 역사의 시작점에는 이수정이라는 한 개인의 간절한 요청과 치밀한 준비가 있었습니다. 그의 편지가 언더우드를 비롯한 수많은 선교사를 조선으로 이끌었고, 그가 번역한 한글 성경이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현재 한국 기독교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 - 교회의 세속화, 이단의 출현, 본질을 잃은 신앙생활 - 은 바로 이런 초기 선교사들의 순수한 헌신 정신을 잊어버린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이수정과 같은 선구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기독교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ROIuJFdE6c&list=PLXXXYyFjdwSahLN4sXKMQBmURnL8QQVc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