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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영화리뷰, 인종차별, 흑인인권운동, 실화영화, 백악관, 오바마

인종차별은 과거의 문제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버틀러>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실존 인물 유진 앨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34년간 8명의 대통령을 모신 흑인 버틀러의 생애를 통해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깊고 질기게 이어져 왔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두 세대의 생존 방식, 어느 쪽이 옳았을까
일반적으로 흑인 인권 운동이라 하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나 거리 행진 같은 장면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조용하고 내밀한 곳에서 벌어진 또 다른 생존을 보여줍니다. 백악관 버틀러로 34년을 일한 세실이 그 주인공입니다.
세실은 1926년 조지아주 목화 농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이후 저택 안에서 하인 일을 배우게 되는데, 여기서 버틀러(Butler)란 단순한 청소부나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백인 상류층의 생활 전반을 보필하며 그들의 요구를 말하기 전에 먼저 파악하고 대응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 직종을 의미합니다. 세실의 스승이 그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것도 바로 "백인의 마음을 읽는 법"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적잖이 불편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눌렀기 때문입니다.
반면 큰아들 루이스는 대학에서 비폭력 저항운동에 뛰어듭니다. 비폭력 저항운동(Nonviolent Resistance)이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시민 불복종 방식으로, 물리적 폭력 없이 부당한 법과 제도에 맞서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아버지는 TV로 아들이 체포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의 장면을 번갈아 보면서 누가 더 용감한가 가 아니라, 각자가 처한 시대와 위치에서 가능한 최선을 택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침묵으로 버텨온 것을 아들 세대는 나약함으로 오해했고, 아들 세대가 거리로 나간 것을 아버지 세대는 무모함으로 봤습니다. 이 두 시선의 충돌이 영화의 가장 아픈 지점이었습니다. KKK 단(Ku Klux Klan)의 습격 장면도 등장하는데, KKK단이란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을 테러해 온 극단주의 단체입니다. 루이스가 이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장면은 비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고독한 선택이었는지를 실감하게 해 줬습니다.
- 세실(아버지 세대): 백인 사회에 순응하고 침묵하며 가족을 지키는 방식으로 생존
- 루이스(아들 세대):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직접 거리에 나서 권리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저항
- 두 방식 모두 당대의 인종차별 구조 안에서 나온 각자의 최선이었다는 점에서 어느 한쪽을 단순히 옳다고 말할 수 없음
인종차별의 현실과 끝나지 않은 화해
일반적으로 인종차별은 1960~70년대 미국 남부의 문제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달랐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끝나는 결말이 희망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 희망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있는지를 영화 자체가 내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1964년 존슨 대통령 시대, 세실은 자신을 처음 채용한 인사 관리인을 찾아가 흑인 직원도 백인과 동일한 임금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제 경험상 조직 안에서 이런 요구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지 압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임금 평등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지금 기준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 흑인 남성의 중간 소득은 백인 남성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습니다(출처: 미국 노동부(U.S. Department of Labor)).
1986년, 레이건 대통령에게 백악관 직원 임금 평등을 직접 요청하고 마침내 받아들여진 뒤, 세실은 대통령 내외의 만찬에 손님으로 초대됩니다. 34년 만에 처음으로 서빙하는 사람이 아닌 대접받는 사람이 된 순간, 세실은 오히려 평생 자신이 지어온 가식적인 미소를 떠올리며 회의감을 느낍니다. 저는 이 장면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지워온 자신이 사라진 줄도 몰랐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루이스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철폐 시위를 주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행된 극단적인 인종 분리 정책으로, 넬슨 만델라는 이 제도에 맞서 싸우다 27년간 수감된 뒤 석방되어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입니다(출처: 노벨위원회(The Nobel Prize)). 세실은 사표를 쓰고 아들을 찾아가 이 시위에서 나란히 섭니다. 부자 사이의 화해를 미국이 아닌 전 지구적 인종차별 문제의 현장에서 그린 선택이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2008년 오바마 당선 이후 세실이 다시 백악관을 향해 걷는 뒷모습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흑인 버틀러에서 흑인 대통령의 탄생까지, 극적인 변화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인종, 성별, 출신에 따른 차별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그 씁쓸함이 남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버틀러는 실화인가요?
A. 네, 실존 인물 유진 앨런(Eugene Allen)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4년간 8명의 미국 대통령을 모신 백악관 버틀러였습니다. 다만 아들의 인권 운동 참여나 국회의원 당선 등은 영화적 각색이며, 아내가 오바마 대선 투표 전날 사망한 것은 실제 사실입니다.
Q. 비폭력 저항운동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나요?
A. 일반적으로 폭력적 저항이 더 빠른 변화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비폭력 저항운동은 1964년 미국 민권법(Civil Rights Act) 통과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KKK단의 습격이나 경찰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Q. 넬슨 만델라와 아파르트헤이트는 영화에서 왜 등장하나요?
A. 루이스가 넬슨 만델라 석방 시위를 주도하는 장면은 미국의 흑인 인권 문제가 단지 국내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인종차별의 일부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란 남아공의 극단적 인종 분리 정책을 말하는데, 이 장면에서 세실이 아들을 찾아가 나란히 서는 것이 부자 간 화해의 상징적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Q. 세실과 루이스 중 누구의 방식이 더 옳았나요?
A. 저는 이 질문에 어느 한쪽 손을 들기가 어려웠습니다. 침묵으로 가족을 지킨 아버지와 거리에서 권리를 외친 아들은 서로 다른 시대적 조건과 위치 안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도 어느 한쪽을 영웅으로 그리기보다, 두 방식이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여주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결론
영화 버틀러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감동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세실의 34년이 단지 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우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오바마 당선으로 희망적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희망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관객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상 차별은 언제나 거창한 형태로만 오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무시와 침묵, 그 안에 쌓여 있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그 불편함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을 제대로 본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