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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흥행 분석 (역주행, 액션 연출, 기획영화)

 

솔직히 '범죄도시'가 650만 관객을 동원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추석 대목에 개봉했다는 것 말고는 딱히 흥행 보증수표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올해 박스오피스 5위, 역대 청불 영화 중 3위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석 연휴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기간 특수로는 설명이 안 되는 지점들이 꽤 많습니다.

추석 특수가 아니었던 역주행 흥행

제가 직접 극장가 분위기를 지켜본 결과, '범죄도시'의 흥행 패턴은 일반적인 한국 영화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보통 천만 영화의 대표격인 '부산행'을 보면 개봉 첫날 1,571개 스크린에서 87만 명을 동원했고, 초반 열흘간 누적 관객이 700만 명을 넘어서며 전체 관객의 60%가 초반에 몰렸습니다. 여기서 스크린 수는 극장에서 해당 영화에 배정한 상영관 개수를 의미하는데, 스크린이 많을수록 관객 접근성이 높아져 초반 흥행에 유리합니다.

반면 '범죄도시'는 10월 3일 개봉 당시 스크린이 600개에 불과했고, 당일 관객도 16만 명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면서 스크린이 점차 늘어나 10월 8일 주말에는 1,315개까지 확대되었고, 하루 최대 42만 명이라는 피크를 찍었습니다. 연휴 기간 7일 동안 모은 관객은 217만 명으로 전체의 30%밖에 되지 않았고, 오히려 연휴가 끝난 뒤 433만 명이 추가로 유입되는 역주행 곡선을 그렸습니다.

같은 날 개봉한 '남한산성'과 비교하면 더 극명합니다. '남한산성'은 연휴 내내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하며 연휴 동안 300만 관객을 넘겼지만, 연휴 이후 관객 점유율이 급락하며 최종 384만 명으로 마감했습니다. 전체 흥행의 90%가 초반 물량 공세에 집중된 전형적인 기획 영화 패턴이었던 셈입니다. 제 경험상 청불 등급은 가족 단위 관객 동원에 치명적인데, '범죄도시'는 이 핸디캡을 극복하고 입소문만으로 스크린을 늘려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동석 티켓파워보다 중요했던 연출력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흥행에 한몫했을 거라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의 단독 티켓파워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2011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베테랑'의 아트박스 사장, '부산행'의 상화 역까지 이어지며 마요미표 캐릭터를 구축해왔지만, 주연으로 나선 작품들은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홍보 단계에서도 그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조연이나 우정 출연 수준의 비중이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란 건 오프닝 2분 30초 만에 관객이 얻는 정보량이었습니다. 2004년 가리봉동 연변거리 배경, 칼부림이 일어나는 지역 특성, 이 상황을 대하는 경찰들의 태도, 주인공의 성격과 체격, 상인들과의 친밀도, 심지어 미혼이라는 사실까지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거창한 설명 없이 짧은 인트로로 캐릭터와 배경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이런 각본 구조를 '후크 씬(Hook Scene)'이라고 부르는데, 관객의 주의를 끌고 몰입을 유도하는 오프닝 기법입니다.

영화는 세 개로 나뉜 중국계 조직, 한국 조폭, 건설회사, 경찰 조직, 시장 상인들까지 복잡한 관계망을 2시간이 안 되는 러닝타임에 풀어냅니다. 제 생각에 이게 가능했던 건 신파 정서를 배제하고 쿨한 톤을 유지하며 빠르게 전개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영화 특유의 감정 과잉이나 억지 눈물 장면 없이 시종일관 담백하게 밀어붙이는 연출이 오히려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액션이 아닌 폭력으로 캐릭터를 말하다

'범죄도시'의 액션 장면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기능적입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화려한 와이어 액션이나 CG 없이도 긴장감과 몰입감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폭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능으로 작동합니다.

  • 말없이 캐릭터의 성격과 강도를 설명하는 캐릭터 묘사 수단
  • 느닷없는 타이밍으로 긴장감을 주입하는 서사 장치
  • 뜻밖의 웃음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톤 조절 도구

마동석을 캐스팅했으면 화려한 액션에 대한 욕심이 당연히 있었을 텐데, 감독은 이 욕심을 끝까지 자제하고 마지막 결투 신에서 폭발시킵니다. 여기서 결투 신은 주인공과 악당의 일대일 대결 장면을 가리키는데, 보통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배치되어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는 구간입니다. 제 경험상 한국 영화 결투 장면 중에서 가장 사실적이고 목숨을 건 듯한 느낌을 준 장면이었습니다.

악역 설정도 영리합니다. 보통 실화 기반 범죄 영화는 부녀자 대상 범죄, 장기 밀매, 재벌 부조리 같은 현실 밀착형 소재로 관객 공감을 끌어내지만, 동시에 불편함도 줍니다. '범죄도시'는 중국계 조폭을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피해자 대부분을 가해자 본인들로 한정하며 이 지점을 회피했습니다. 한국에 있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고, 우리 일이지만 왠지 먼 나라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는 이 구조 덕분에 관객은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해피엔딩을 통쾌하게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평론가들의 반응입니다. 포털 사이트 기준으로 '택시운전사'에는 11명의 평론가가 평을 남겼지만, 같은 평점을 받은 '범죄도시'에는 단 3명만 평을 남겼습니다. 평론가들조차 이 영화를 흥행 공식에 충실한 기획 영화쯤으로 치부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범죄도시'가 기획 영화의 외피를 쓴,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라고 봅니다. 효율적인 각본, 군더더기 없는 연출, 기능적 액션, 영리한 악역 설정이 맞물리며 만들어낸 흥행이었고, 그게 관객들에게 제대로 먹혔던 겁니다.

총  평

범죄도시는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액션'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대개 이야기나 캐릭터와는 상관없이 그저 액션을 위한 액션 장면이 하나쯤 등장합니다.
꼭 그렇게 싸울 필요는 없는데도 과장되게 날거나 도는 액션이 포함되곤 합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때로는 멋지고 통쾌하지만, 영화 자체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폭과 경찰의 전면전을 다루고 있음에도, 마지막 결투 장면을 제외하면 '보여주기식 액션'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액션이라기보다는 폭력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 영화의 폭력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기능으로 사용됩니다:
말없이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고, 느닷없는 타이밍으로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또한 뜻하지 않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전환합니다.
이처럼 캐릭터의 설정과 극의 전개를 위해 사용되는 액션은 화려하지 않더라도 훨씬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감독은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했음에도 화려한 액션 장면에 대한 욕심을 자제하고, 마지막 두 주인공의 결투에서 그 욕심을 폭발시켰습니다.
마지막 결투 장면은 다소 보여주기식 액션이 가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실적으로 느껴지며 정말 목숨 걸고 싸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액션 영화를 지나 한발 앞서나가는 액션 영화가 새롭게 나타난것에 대하여 너무 기쁘고 이러한 스토리가 탄탄한 영화가 영화계 발전에 선두 주자가 되기를 바라고 한국영화가 침체기를 벋어나서 세계에 우뚝서는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5phEt-KJ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