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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 마동석, 한국영화, 액션영화, 박스오피스, 장르영화, 영화리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가 추석 연휴도 아닌 '그 이후'에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제가 극장에서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이 영화가 단순히 잘 만든 오락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역주행 곡선과 제가 스크린 앞에서 받은 인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더군요.



    추석 특수가 아니었던 역주행 흥행

    저도 처음엔 "추석 대목에 개봉한 덕분이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직접 들여다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범죄도시'는 2017년 10월 3일 개봉 당시 스크린 600개에 일일 관객 16만 명 수준으로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스크린 수란 극장이 해당 영화에 배정한 상영관의 개수를 의미하는데, 이 숫자가 많을수록 관객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물리적 접근성이 높아져 초반 흥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600개는 대형 기획 영화 기준으로 보면 초라한 출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면서 스크린이 점차 늘어나 10월 8일 주말에는 1,315개까지 확대되었고, 하루 최대 42만 명이라는 피크를 찍었습니다. 연휴 7일 동안 모인 관객은 217만 명으로 전체의 30%에 불과했고, 오히려 연휴가 끝난 뒤 433만 명이 추가로 유입되는 역주행 곡선을 그렸습니다. 최종 성적은 올해 박스오피스 5위, 역대 청불 영화 중 3위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같은 날 개봉한 '남한산성'과 비교하면 이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남한산성'은 연휴 내내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하며 연휴 기간에만 300만 관객을 넘겼지만, 연휴 이후 관객 점유율이 급락하며 최종 384만 명으로 마감했습니다. 전체 흥행의 90%가 초반 물량 공세에 집중된 전형적인 기획 영화 패턴, 즉 대규모 스크린 선점으로 초반에 관객을 쓸어 담는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범죄도시'는 스크린을 먼저 빼앗지 않고 관객이 먼저 끌어당겼습니다.

    제 경험상 청불 등급은 가족 단위 관객 동원에 치명적인 핸디캡입니다. 명절 연휴에 조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핸디캡을 오직 입소문만으로 뒤집었다는 점이 제게는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흥행은 마케팅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만든 결과에 가깝습니다.

    • 개봉 당시 스크린 600개 → 연휴 피크 시 1,315개로 자연 확대
    • 연휴 기간 관객 217만(30%) vs 연휴 이후 433만(70%): 전형적인 역주행 패턴
    • 청불 등급·스크린 열세·가족 관객 배제라는 세 가지 핸디캡을 모두 극복
    • 같은 날 개봉한 '남한산성' 대비 역주행 폭 압도적으로 큼
    요약: 범죄도시의 흥행은 추석 특수가 아니라, 연휴 이후 입소문이 만들어낸 역주행이 본체였다.

     

    기능적 액션이 만들어낸 장르 영화의 완성도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놀란 건 오프닝이었습니다. 2분 30초 안에 2004년 가리봉동 연변거리라는 공간적 배경, 칼부림이 일상인 지역의 분위기, 경찰들의 태도, 주인공의 성격과 체격, 상인들과의 관계, 심지어 미혼이라는 정보까지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이런 오프닝 기법을 후크 씬(Hook Scene)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영화 시작 직후 관객의 주의를 단번에 낚아채 몰입으로 끌어당기는 장치입니다. 보통 설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복잡한 배경을 이렇게 압축해서 전달하는 각본 구조는, 제 경험상 한국 상업 영화에서 이 정도로 효율적인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여주기식 액션과 이 영화의 폭력 장면은 결이 다릅니다. 보여주기식 액션이란 이야기나 캐릭터와 무관하게 스펙터클을 위해 존재하는 장면, 즉 꼭 그렇게 싸울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와이어나 CG를 동원해 과장되게 날고 도는 장면을 가리킵니다. 이런 장면은 순간적으로 통쾌하지만 영화의 서사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합니다. '범죄도시'는 조폭과 경찰의 전면전을 다루면서도 마지막 결투 신을 제외하면 이런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의 폭력은 세 가지 기능으로 작동합니다. 말 한마디 없이 캐릭터의 성격과 강도를 드러내는 캐릭터 묘사 수단으로, 느닷없는 타이밍으로 관객의 긴장을 유발하는 서사 장치로, 그리고 뜻밖의 웃음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톤 조절 도구로 사용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기능에 충실한 폭력 묘사가 오히려 훨씬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는 걸 제가 직접 극장에서 확인했습니다.

    감독은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해놓고도 화려한 액션에 대한 욕심을 끝까지 자제했습니다. 그리고 그 욕심을 마지막 결투 신에서 한꺼번에 폭발시킵니다. 결투 신이란 주인공과 악당의 일대일 대결을 담은 클라이맥스 장면으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의 가장 마지막 고점에 배치됩니다. 제 경험상 한국 영화 결투 장면 중에서 가장 사실적으로 느껴진 장면이었습니다. 다소 보여주기식 요소가 가미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악역 설정도 영리합니다. 중국계 조폭을 악의 축으로 설정하고, 피해자 대부분을 가해자 본인들로 한정한 구조 덕분에 관객은 폭력을 편하게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고, 우리 일인 듯하지만 왠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지는 이 거리감이, 해피엔딩을 통쾌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였다고 봅니다. 포털 사이트 기준으로 '택시운전사'에는 11명의 평론가가 평을 남겼지만 '범죄도시'에는 단 3명만 평을 남긴 것도, 평론가들조차 이 영화의 내공을 과소평가했다는 방증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기획 영화의 외피를 쓴,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라고 봅니다.

    요약: 범죄도시의 폭력 장면은 볼거리가 아니라 서사 도구였고, 그 절제가 마지막 결투 신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범죄도시가 추석 연휴 특수 덕분에 흥행한 건 아닌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데이터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연휴 7일 동안 모인 관객은 전체의 30%에 불과했고, 나머지 70%는 연휴가 끝난 뒤에 유입됐습니다. 추석 특수보다 입소문이 훨씬 강력하게 작동한 사례입니다.

     

    Q. 마동석 때문에 흥행한 거 아닌가요?

    A.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기여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엔 그의 단독 티켓파워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가 주연으로 나선 이전 작품들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 영화 홍보 단계에서도 그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은 거의 없었습니다. 각본과 연출의 완성도가 먼저였다고 봅니다.

     

    Q. 범죄도시의 액션이 다른 한국 영화와 다른 점이 뭔가요?

    A.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기능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액션 영화는 이야기와 무관한 보여주기식 장면이 하나씩 들어가는데, 이 영화는 폭력 장면 하나하나가 캐릭터 묘사, 긴장 유발, 분위기 전환이라는 서사적 역할을 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Q. 청불 등급인데 어떻게 650만 관객을 모을 수 있었나요?

    A. 제 경험상 청불 등급은 가족 관객을 차단하는 치명적인 핸디캡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핸디캡을 입소문만으로 뒤집었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주변에 추천하면서 스크린이 600개에서 1,315개로 자연 확대됐고, 그 흐름이 연휴 이후까지 이어졌습니다. 마케팅이 아닌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만들어낸 결과로 보는 게 맞습니다.

     

    결론

    범죄도시는 기획 영화의 외피를 쓴 장르 영화입니다. 훅 씬으로 압축한 오프닝, 신파 없이 쿨하게 밀어붙이는 연출, 서사에 복무하는 기능적 액션, 그리고 관객이 편하게 소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영리한 악역 구조까지. 이 모든 요소가 맞물리며 만들어낸 흥행이었고, 그게 추석 연휴가 끝난 뒤에도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얻은 교훈은 하나입니다. 관객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게 완성도를 감지한다는 것입니다. 스크린 수나 마케팅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말을 걸어오는 힘. 그게 역주행을 만듭니다. 비슷한 장르 영화가 궁금하다면 '베테랑'과 '부산행'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같은 한국 장르 영화지만 흥행 패턴과 연출 방식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R5phEt-KJ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