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언터쳐블 1%의 우정 (선입견, 브로맨스, 실화)
사회의 상위 1%와 하위 1%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처음엔 그냥 유쾌한 버디무비겠거니 했는데, 이게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는 걸 알고 나서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양극단의 두 사람이 만나는 배경
프랑스의 귀족 가문 출신 필립 포조 디 보르고는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전신마비(사지마비)를 얻게 됩니다. 전신마비란 경추 이상의 척수 손상으로 인해 팔다리와 몸통 전체의 운동 및 감각 기능을 잃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화는 이 필립의 간병인을 뽑는 면접 장면에서 시작되는데, 그 자리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 드리스가 등장합니다.
드리스는 수감 전력이 있고, 실업급여(allocation chômage) 수급을 위해 거절 확인서가 필요해서 그 자리에 나타난 겁니다. 실업급여란 구직 활동을 전제로 국가가 지급하는 일시적 소득 보전 급여를 말합니다. 취업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 드리스를 보고, 저는 오히려 이 장면에서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면접관들이 다들 당황하는 표정인데 필립만 뭔가 흥미롭다는 눈빛이거든요.
필립의 집안은 1500년대부터 기록이 확인되는 귀족 가문입니다. 반면 드리스는 세네갈계 이민 가정 출신으로 파리 외곽의 빈민가에서 자랐습니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간극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바로 '언터처블(Untouchable)'입니다. 여기서 언터처블이란 원래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하층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법도 건드리지 못할 만큼 권력이 강한 상위 1%와 사회에서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하위 1% 모두를 함께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필립: 전신마비 장애, 귀족 가문 출신, 경제적 상위 1%,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처지
- 드리스: 수감 전력 보유, 이민자 가정 출신, 실업급여 수급자, 간병 경험 전무
- 공통점: 사회가 규정한 틀 안에서 서로를 '비정상'으로 볼 수 있는 관계
선입견을 허무는 방식이 핵심이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드리스가 필립에게 동정 어린 눈빛이나 조심스러운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보통 장애인을 처음 대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어색하고 불편해하는지, 그 장면과 극명하게 비교가 되더라고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귀인 오류란 상대방의 행동을 그 사람의 내적 특성만으로 과도하게 설명하려는 인지적 편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저 사람은 전과자니까 위험할 거야", "저 사람은 귀족이니까 오만할 거야" 식의 단순화된 판단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드리스는 이 오류를 거의 저지르지 않습니다. 필립을 휠체어에 탄 부자가 아니라 그냥 한 사람으로 대합니다.
실제로 사회적 고정관념이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은 첫 만남에서 0.1초 이내에 상대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며 이후에도 그 판단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고 합니다. 드리스가 필립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첫 판단의 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이 부분이 영화에서 단순한 감동 코드로만 소비되지 않고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도 일상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그 직업이나 외모, 출신으로 먼저 판단했던 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유쾌한 코미디를 기대하고 봤는데 이렇게 불편한 자기 반성이 따라올 줄은 몰랐거든요.
관계가 삶을 바꾼다는 것, 실화라서 더 묵직하다
이 영화가 단순한 우정 영화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실존 인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필립 포조 디 보르고는 2023년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삶은 실제로 드리스의 모델이 된 압델 야스민 셀로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마지막 장면의 무게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줍니다.
관계의 질이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재산이나 명예가 아니라 친밀하고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였다고 합니다. 필립이 드리스를 간병인으로 선택한 것이 어쩌면 본능적으로 그 진정성을 먼저 알아챈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관계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그 사람의 배경이나 조건을 완전히 걷어내고 보는 건, 사실 꽤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 영화는 그 어려운 일을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게 실화라는 점에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총 평
상위 1%와 하위 1%라는 사회 양극단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깊은 신뢰와 애정으로 함께하는 모습이 기적처럼 느껴지며 깊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는 보통 기존의 생각 때문에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지만, 필립과 드리스는 이러한 선입견을 넘어서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를 통해 상대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영화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관계를 통한 행복이 우리 삶을 살맛나게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진정한 유대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두 사람의 유쾌한 케미스트리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이 영화의 메시지에 더욱 깊은 울림과 공감을 더합니다
선입견 없이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동시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코미디로 가볍게 시작해서 묵직하게 끝나는 이 영화, 한 번쯤 시간 내어 보시길 권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