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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다큐멘터리, 일본인선교사, 조선선교, 신사참배반대, 한일관계, 광복 80주년, CGN

일제강점기 하면 수탈과 억압만 떠오르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일본인이 자국 정부에 맞서 조선인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면, 쉽게 믿어지시겠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파고들수록, 이건 단순한 미담이 아니었습니다. 2025년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개봉을 준비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이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꺼냅니다.
사무라이 가문 출신이 조선행을 택한 이유
일반적으로 선교사라고 하면 서양인 선교사만 떠올리기 쉬운데, 제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인물은 일본인이었습니다. 노림마츠 마사야스. 일본 개신교 역사상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은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입니다. 여기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에서 분리된 기독교 계열을 통칭하는 말로, 장로교·감리교 등 우리가 흔히 아는 개신교 교단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가 조선행을 결심한 계기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었습니다. 자국인이 저지른 일에 일본인으로서 죄책감을 느꼈고, 그 빚을 갚겠다는 마음 하나로 1896년 조선으로 건너왔습니다. 조선어라곤 '하나님'이라는 단어 하나만 배우고 왔다는 사실에서, 저는 그게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충동에 가까운 진심이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무라이 가문 출신이라면 체면과 안정이 보장된 삶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선택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는 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수원 최초의 교회인 동신교회 설립에 기여했습니다. 이 사실은 수원시 지역 교회사 기록에도 남아 있는 역사적 사건입니다(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제 경험상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거대한 흐름보다 이런 개인 한 명의 결단이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 조선 최초 일본인 개신교 선교사: 노림마츠 마사야스
- 결심 계기: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서 비롯된 죄책감
- 활동 지역: 수원, 동신교회 설립에 기여
- 조선 도착 시 알던 조선어: '하나님' 단 한 단어
한복 입은 일본인, 신사참배에 맞서다
오다 나라지 선교사는 '전형복'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고 한복을 즐겨 입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는 자국 문화를 유지하며 활동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전형복 선교사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저는 이게 단순한 문화 존중의 제스처가 아니라, 조선 사회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겠다는 신학적 결단이었다고 봅니다.
그의 배경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라 승려를 꿈꾸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개종(改宗)'이란 기존에 믿어오던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 체계를 받아들이는 행위를 뜻합니다. 자신이 한 번 종교적 전환을 경험한 사람이었기에, 조선인의 눈높이에서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남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평양 숭실대학교 강당에서의 사건이었습니다. 6천 명이 넘는 조선인 앞에서 전형복 선교사는 신사참배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신사참배(神社參拜)'란 일본 신도(神道) 신전에 절을 올리는 의식으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에게 강제 부과된 황민화 정책의 핵심 수단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조선인의 정신까지 일본 것으로 만들려는 장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것은 거짓말입니다"라고 공개 발언했다는 기록은, 제가 자료를 보면서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대목이었습니다.
일본인이 자국 정부 정책을 공개적으로 부정한다는 건 당시 기준으로 목숨을 거는 행위였습니다. 제 경험상 역사 속 이런 장면은 교과서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체제 순응이 생존 전략이던 시대에, 신념이 몸보다 앞선 사람이 실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날에도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2025년, '무명'이 지금 던지는 질문
2025년은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을사늑약 120주년이 한꺼번에 겹치는 해입니다. 이 시점에 '무명'이 개봉을 준비한다는 건, 제가 보기엔 우연이라기보다 의도된 타이밍으로 보입니다. CGN이 '서서평' 이후 8년 만에 내놓는 장편 다큐멘터리라는 점도 그 무게를 더합니다.
제작진은 2년간 자료 조사와 현지 인터뷰, 그리고 재연 드라마 촬영까지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재연 드라마'란 역사적 사실을 배우들이 직접 연기로 재현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단순 기록 영상과 달리 감정적 몰입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연출 기법입니다. 배우 하정우가 내레이션을 맡아 이야기의 결을 잡아준다고 하니, 극적 완성도 면에서도 기대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한일 관계를 다루는 콘텐츠는 정치·외교적 프레임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자료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작품은 그 프레임 바깥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국가가 아닌 개인, 정책이 아닌 신념, 갈등이 아닌 헌신이라는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2년간의 취재 결과물로서 한일 문화·역사 교류의 실증적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출처: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영화는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되며, 교회와 단체를 위한 특별 대관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상영 후 예배 시간까지 함께 제공된다고 하니, 단순 관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이 메시지를 함께 소화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형식 자체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극장을 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무명'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될 예정이며, 교회나 단체를 위한 특별 대관 프로그램도 운영됩니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소규모 상영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상영 후 예배 시간까지 연계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Q. 노림마츠 마사야스가 일본 최초의 조선 선교사라는 게 맞나요?
A. 정확히는 일본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 계열 선교사로는 최초입니다. 가톨릭 선교는 그보다 앞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개신교 한정으로 최초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제가 자료를 확인하면서 이 구분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Q. 신사참배 강요는 실제로 어느 시기부터 시작됐나요?
A. 일제의 신사참배 강제화는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되었고, 1938년 조선총독부가 종교단체에까지 참배를 강요하면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단순한 종교 의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황민화 정책의 핵심 도구였고 이를 거부하면 탄압을 받았습니다.
Q. '무명' 다큐멘터리를 만든 CGN은 어떤 곳인가요?
A. CGN은 기독교 계열 방송·영상 제작 기관으로, 이전에 '서서평'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습니다. '무명'은 그로부터 8년 만에 내놓는 장편 작품으로, 2년간의 자료 조사와 재연 드라마 촬영이 병행된 프로젝트입니다.
결론
저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늘 느끼는 게 있습니다. 거대한 국가 서사보다 이름 없는 개인 한 명의 선택이 훨씬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것입니다. 노림마츠 마사야스도, 전형복도, 교과서에는 없는 이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남긴 흔적은 지금도 수원의 교회 터에, 평양 강당의 기록에 실재합니다.
'무명'이라는 제목이 단순한 영화 제목이 아닌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이름 없이 헌신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 헌신이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었다는 사실 자체가 2025년 지금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개인의 신념은 역사의 갈등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제 경험상 이 질문에 쉽게 답하는 사람은 역사를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직접 보고 그 답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