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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비하인드 (비하인드 스토리, 인적 오류, 실존 인물)
솔직히 처음 타이타닉을 봤을 때는 그냥 멜로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씩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실제 비극을 재현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만들어진 작품인지 새삼 감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타이타닉의 침몰 자체가 과연 피할 수 없는 사고였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영화 타이타닉, 제작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
침대에 나란히 누워 마지막을 맞이하는 노부부 장면. 저도 처음엔 제임스 카메론이 만들어낸 극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부부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당시 뉴욕에서 메이시스 백화점을 운영하던 이사도르 스트라우스와 아내 로잘리아 에이다 스트라우스 부부가 모델입니다. 아내 아이다는 구명정에 탑승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함께 살았으니 함께 눈감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거부했습니다. 이 대사는 이후 영화 속 로즈의 입을 통해 거의 그대로 재현됩니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세트장 전체가 극도로 긴장했습니다. 물이 한 번에 쏟아지면 세트와 가구 전체가 파손되기 때문에 딱 한 번의 테이크(take)만 허용됐습니다. 여기서 테이크란 영화 촬영에서 같은 장면을 반복 촬영할 때 각각의 시도를 뜻하는 단위입니다. 이 장면 하나를 위해 수백 명의 스태프가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야 했다는 사실, 제가 직접 확인해보니 단순히 물을 쏟아붓는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로즈가 칼에게 침을 뱉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 번 재촬영이 이루어졌고, 칼 역의 빌리 제인은 침범벅이 되어야 했습니다. 케이트 윈슬렛은 반복 촬영 과정에서 입이 바짝 마르자 달걀 흰자를 침 대신 사용했고, 칼의 얼굴에 뱉을 때는 석유 젤리(petroleum jelly)를 윤활제로 동원했습니다. 석유 젤리란 피부과에서도 쓰이는 반고체 상태의 보습제로, 여기서는 점도를 조절하는 용도로 활용됐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면 영화 제작 현장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고통스러운 공간인지 절감하게 됩니다. 케이트 윈슬렛은 잠수복 없이 차가운 물속에서 촬영을 이어가다 저체온증(hypothermia)에 걸렸습니다. 저체온증이란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상태로,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제임스 카메론은 촬영을 멈추지 않았고, 윈슬렛과 카메론 둘 다 "제발 저를 죽게 해달라"고 생각하며 매일 아침을 맞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이 영화가 상업적 오락을 넘어선 어떤 집착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실제로 심해 잠수(deep-sea diving)를 12번이나 감행했습니다. 심해 잠수란 일반 스쿠버 다이빙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인 수백 미터 이상의 해저를 탐사하는 작업입니다. 난파선까지 도달하는 데만 편도 11시간이 걸렸고, 한 번의 잠수에 4만 달러가 투입됐습니다. 그는 2010년 TED 컨퍼런스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난파된 타이타닉으로 뛰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를 만든 이유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목적 자체가 영화가 아니라 타이타닉이었던 셈입니다.
제작 비용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1910년부터 1912년까지 타이타닉 건조에 들어간 비용은 당시 기준 750만 달러, 1997년 물가로 환산하면 약 1억 2천만 달러에서 1억 5천만 달러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영화 제작비는 2억 달러였습니다. 실제 배를 짓는 비용보다 그 배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든 셈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10억 달러를 처음으로 돌파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타이타닉은 1997년 12월 9일부터 1998년 4월 3일까지 15주 연속으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비디오 테이프가 출시되던 시점에도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 중이었고, 일부 극장에서는 필름 자체를 교체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기술적 선택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400m 해수압을 견디는 심해 카메라 시스템 개발 (제임스 카메론의 형제 마이크 카메론과 파나비전 공동 개발)
- 엔진룸에 평균 신장 152cm의 배우 투입 — 세트가 실제보다 크게 보이는 원근법 트릭 활용
- 보일러실에 거울 설치로 공간이 두 배로 넓어 보이는 착시 연출 (1986년 '에이리언스'에서도 썼던 기법)
- 로즈와 엄마의 라운지는 4분의 1 크기 미니어처로 제작 후 그린스크린 합성
- 침몰 후 장면은 130만 리터 규모의 탱크에서 촬영, 왁스와 가루로 젖고 얼어붙은 느낌 연출
타이타닉 침몰, 정말 피할 수 없었을까
영화는 비극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만, 저는 사실 이 부분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타이타닉의 침몰이 순수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연속된 인적 오류의 결과라는 시각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도 그 입장에 가깝습니다.
최근 공개된 역사적 자료들을 보면, 타이타닉은 출항 전부터 여러 위험 신호가 있었습니다. 항해 중 복수의 빙하 경고 전보(ice warning telegram)가 접수됐습니다. 빙하 경고 전보란 다른 선박이나 기상 관측소로부터 특정 항로에 빙하가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는 통신 수단입니다. 그런데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 회장 J. 브루스 이스메이가 이 전보를 주머니에 넣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물론 이건 확증이 없는 의혹이지만, 당시 선박이 최고 속력으로 항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충돌 이후의 판단도 문제였습니다. 스미스 선장은 빙산과 충돌한 이후에도 배를 완전히 멈추지 않고 반속 전진을 지시했고, 이것이 선체 내부로 유입되는 해수량을 늘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항해 장교들이 육분의(sextant) 판독에서 오류를 범해 타이타닉호의 실제 위치가 잘못 계산됐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육분의란 별이나 태양의 고도를 측정해 선박의 위치를 파악하는 항법 도구입니다. 이 오류로 인해 조난 신호에 실린 좌표 자체가 부정확했고, 구조선 카르파티아(Carpathia)호가 생존자들을 발견한 것은 사실상 우연에 가까웠습니다.
구명정(lifeboat) 문제도 빠질 수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60명을 태울 수 있는 보트에 12명만 태운 채 내려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실제 기록에 근거한 설정입니다. 월터 로드(Walter Lord)가 쓴 '기억해야 할 밤(A Night to Remember)'에 따르면 일부 승무원들이 '여성과 아이 우선' 원칙을 무시하고 1등석 남성 승객들을 먼저 태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출처: Encyclopedia Titanica). 구명정 수용 인원 자체도 전체 탑승객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으니, 사전 계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문제가 있었던 셈입니다.
한편으로 캘리포니안(Californian)호의 역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공존합니다. 영국 초기 조사에서는 캘리포니안호가 조기에 출발했다면 더 많은 생존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나 1992년 후속 조사에서는 캘리포니안호가 첫 조난 신호를 받자마자 즉각 출발했더라도 현장에 제때 도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로드 선장을 사실상 무죄로 평가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누군가를 단순히 악당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도 위험한 일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잭과 로즈라는 캐릭터도 순수한 허구가 아닙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두 인물을 완전히 가공의 존재로 설계했지만, 시나리오가 완성된 뒤 실제로 타이타닉에 '제이 도슨(J. Dawson)'이라는 인물이 탑승해 있었고 그 역시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도슨의 실명은 조셉 도슨으로, 1888년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트리머(trimmer)였습니다. 트리머란 선박 내 석탄을 보일러로 운반하는 하급 선원을 뜻합니다. 로즈의 모델로는 1998년 105세로 사망한 캘리포니아의 예술가 베아트리체 우드(Beatrice Wood)가 거론됩니다. 카메론의 의도와는 달리, 현실은 그의 이야기 안으로 자꾸 들어왔습니다.
타이타닉이 빙산을 피하지 않고 정면 충돌했다면 뉴욕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손상이 심해 하루 이틀 지연됐겠지만, 회피 기동 자체가 오히려 더 넓은 범위의 선체 파손을 불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접할 때마다 저는 그 밤에 내려진 수많은 결정들이 얼마나 사소하게, 그러나 치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총 평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제임스 카메론이 쏟아 부은 노력에 대한 뒷이야기가 화면에 펼쳐진 이야기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는 역사상 가장 돈이 많이 든 영화라는 달갑지 않은 명예를 안겨주었다.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1912년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유명한 타이타닉호를 복제한 약 23킬로미터에 달하는 배에서의 6개월에 걸친 멕시코에서의 촬영에 들어갔다. 배우들과 제작진이 노바스코시아에서 먹은 음식 때문에 식중독을 일으켜 촬영이 연기되는 등 온갖 문제들이 속출했습니다.
계급을 뛰어넘은 청춘 남녀의 사랑과 갑자기 찾아온 비극, 삶과 죽음의 갈림길과 긴 세월이 흐른 후의 회한. 스토리만 놓고 보면 진부하지만, 이 영화가 아직도 회자되는 건 테크놀로지와 스케일에 대한 제임스 카메론의 완벽주의 덕이다. 블록버스터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된 〈타이타닉〉은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가 줄 수 있는 모든 쾌감을 집결시킨다. 반드시, 정말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
타이타닉은 영화이기 이전에 실제 비극의 기록입니다. 영화의 비하인드만큼이나 침몰 자체의 비하인드도 무겁습니다. 화려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흥행 기록 너머에 있는 이 질문들을 같이 생각해보는 것도, 이 영화를 다시 볼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타이타닉을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으셨다면, 이번엔 로즈와 잭의 사랑보다 배경의 디테일에 눈을 두고 감상해보시길 권합니다. 분명 다른 영화로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