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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17, 롱테이크, 노맨스랜드, 전쟁영화, 샘멘데스, 로저디킨스, 1차 세계대전

     

    전쟁 영화라고 해서 긴장되는 전투 장면을 기대하고 틀었는데, 막상 화면이 시작되자마자 느낀 건 긴장이 아니라 숨이 막히는 답답함이었습니다. 편집 없이 카메라가 두 병사를 실시간으로 쫓아가는 컨티뉴어스 카메라 워크 방식이 만들어낸 감각이었는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기술적 장치가 왜 이 영화에서만 유독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불쑥 떠올린 질문들을 짚어보겠습니다.



    롱테이크가 만든 감각,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롱테이크는 "기술적 묘기"로 먼저 소비됩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도 그랬습니다. "편집 없이 찍은 영화"라는 수식어가 워낙 강하게 앞서 있어서, 처음엔 그 기술 자체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롱테이크 기법 자체보다, 그게 이 특정한 공간과 만났을 때 생기는 화학반응이 핵심이었습니다.

    컨티뉴어스 카메라 워크란 쉽게 말해 컷 없이 카메라가 끊기지 않고 피사체를 따라가는 촬영 방식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편집이 사라진다는 점인데, 편집이 없다는 건 관객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컷이 넘어가는 순간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안도감을 느낍니다. 이 영화는 그 안도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허락하지 않습니다.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는 이 작업을 위해 배우들과 4개월에 걸친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배우가 달리는 속도에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맞춰야 하고, 조명 변화까지 미리 계산된 상태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봤을 때, 화면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습니다. 예쁜 구도라고 느꼈던 장면들이 사실은 엄청난 물리적 반복의 결과물이라는 게 느껴졌고, 그게 화면에서 전달되는 피로감과 겹쳐 이상하게 실감이 났습니다.

    이 연출 방식이 이 영화에 꼭 맞는 이유는 배경이 노 맨스 랜드이기 때문입니다.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란 양측 전선 사이에 위치한, 어느 편도 점령하지 않은 죽음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공간에서는 개인의 용맹함도, 전략적 판단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걸으면 죽습니다. 롱테이크는 그 공간의 논리를 관객에게 그대로 이식합니다. 도망칠 컷이 없으니, 관객도 그곳에 발이 묶이는 겁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은 폭음도 총성도 없는 고요한 전선이었습니다. 시체가 여기저기 묻혀 있는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왜 그토록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는지를, 어떤 설명보다 그 장면 하나가 더 빠르게 이해시켜 줬습니다. 전쟁사 연구자들이 이 전쟁을 "최초의 산업화된 학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 장면 안에 다 담겨 있었습니다(출처: 영국 국립전쟁박물관 IWM).

    1차 세계대전이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핵심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철조망 저지선: 대규모 병력 이동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적 장벽으로, 개인의 돌파 의지를 구조적으로 무효화함
    • 지하 갱도와 부비트랩: 적진에 진입한 순간부터 예측 불가한 위협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어 긴장이 끊기지 않음
    • 화력의 비대칭: 독가스와 기관총이 동시에 사용된 최초의 전장으로, 개인의 전투 능력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구조
    • 노 맨스 랜드: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으로, 생존 자체가 우연에 가까운 죽음의 지대
    요약: 롱테이크는 기술적 묘기가 아니라, 노 맨스 랜드라는 공간의 논리를 관객에게 직접 체험시키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사명감이 내러티브가 되는 순간

    저도 처음엔 이 영화가 전쟁 영웅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병사가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구조가 전형적인 영웅 서사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그 판단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영화의 중심에 있는 건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블레이크가 죽고 난 뒤 스코필드의 발걸음이 달라지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내러티브, 즉 개인의 의지와 선택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기 매우 어려운 전쟁이었습니다. 오럴 히스토리 전통이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럴 히스토리란 문자로 기록되지 않고 구술로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증언을 뜻하는데, 샘 멘데스 감독이 할아버지 알프레드 H. 멘데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영화를 기획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전통에 닿아 있습니다. 상상 속의 지옥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발을 디뎠던 공간을 재현했다는 무게가 다릅니다.

    그 무게가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는 건 블레이크가 죽은 이후입니다. 스코필드가 달리는 이유는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동기가 다분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보편적인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위해 앞으로 나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느낌이 들었던 건 그래서였습니다.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우리를 계속 걷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불타는 교회 앞에서 홀로 달리는 스코필드, 강물에 떠내려가면서도 나무토막을 붙잡는 장면. 제 경험상 이런 장면들은 작은 화면으로 보면 절반도 전달이 안 됩니다. 롱테이크와 토마스 뉴먼의 음향 설계가 결합된 영화이기 때문에,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준비하고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 영화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평가가 아깝다고 봅니다.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 위에서만 작동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기술이 전쟁에 처음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기, 독가스·기관총·철조망이 동시에 등장하면서 전쟁의 양상 자체가 바뀌었고, 이 전쟁은 기존의 개인 전투 능력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스코필드의 무기력함은 연출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의 재현입니다. 영화 비평 측면에서도, 1917은 202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기술적 성취 이상의 가치를 공식 인정받았습니다(출처: 골든글로브 공식 사이트).

    이 영화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답이 없고, 승리도 없고, 영웅도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정직함입니다. 1차 세계대전은 실제로 그런 전쟁이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국가나 명분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 하나를 위해 앞으로 걸었습니다.

    요약: 스코필드의 사명감은 전쟁 영웅담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맥락 위에서만 성립하는 가장 인간적인 동기였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1917은 진짜로 편집 없이 찍은 건가요?

    A. 실제로는 정교한 편집점을 활용해 장면들을 이어 붙인 방식입니다. 완전히 한 번에 찍은 건 아니지만, 편집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설계된 컨티뉴어스 카메라 워크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컨티뉴어스 카메라 워크란 컷 없이 카메라가 끊기지 않고 피사체를 따라가는 촬영 방식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원 컷 영화"라고 알려져 있는데, 더 정확하게는 "원 컷처럼 보이도록 만든 영화"에 가깝습니다.

     

    Q. 샘 멘데스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거 맞나요?

    A. 맞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H. 멘데스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전령으로 복무하며 직접 겪은 이야기를 구술로 전해줬고, 그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했습니다. 이 구술 전통을 오럴 히스토리라고 하는데, 문자 기록이 아닌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진 역사적 증언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Q. 1917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제가 확인했을 당시 기준으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스트리밍 서비스는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현재 서비스 상태는 직접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제 경험상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준비하고 보면 몰입감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환경 설정에 신경 쓰는 것을 권합니다.

     

    Q.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왜 이렇게 적나요?

    A. 일부 게임·영화 업계에서는 1차 세계대전을 "교훈을 추출하기 어려운 전쟁"으로 표현합니다. 개인의 용기나 전략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내러티브 구조, 즉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선택이 결과를 바꾸는 구조를 만들기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노 맨스 랜드에서는 영웅도, 패자도, 의미 있는 승리도 뚜렷하게 그려내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게 오히려 1917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론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1917은 잘 만든 전쟁 영화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이라는 공간을 관객에게 체험시키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컨티뉴어스 카메라 워크와 노 맨스 랜드가 맞물리는 방식, 그리고 블레이크의 죽음 이후 스코필드의 사명감이 유일한 내러티브가 되는 구조까지. 이 세 가지가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감각으로 수렴할 때,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빠져나오기 어려운 무언가가 남습니다.

    정리하면, 이 영화는 기술과 역사와 인간이 드물게 잘 맞물린 작품입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시각효과상·음향믹싱상을 수상한 것도, 그 맞물림이 기술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한 한 큰 화면과 좋은 음향 환경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작은 화면으로는 절반도 전달이 안 된다는 게 제 솔직한 판단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AiuTVIta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