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당시 이 영화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재난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해운대, 파도의 규모보다 훨씬 크게 마음을 흔들어 놓은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줄거리: 파도가 오기 전, 사람들의 이야기영화는 2004년 인도양 쓰나미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어선 선장 최만식(설경구)은 조업 중 갑작스러운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고, 함께 배에 탔던 친구 아버지를 눈앞에서 잃습니다. 그 장면이 워낙 압도적으로 연출되어서, 저는 시작 5분 만에 이 영화가 단순한 재난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부산 해운대로 돌아온 만식은 수산업에 종사하며 겉으로는 평범..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여고생 추억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는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 써니(2011)는 단순한 향수 코드를 넘어,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아온 중년 여성'이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캐릭터 분석 — 써니 7인이 각자 다른 이유로 오래 남는다써니 멤버들이 왜 이렇게 기억에 남는가를 두고, "집단 캐릭터 서사(ensemble character narrative)가 잘 짜여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여기서 앙상블 캐릭터 서사란 주인공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인물이 각자의 결핍과 욕망을 가지고 동시에 서사를 이끌어 가는 구조를 말합니다. 저도..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죽어가고 있고, 사랑이 시작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 의아함이 영화가 끝나고 한참 뒤에야 풀렸습니다. 1998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자와 그를 사랑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하루를 제대로 살고 있는가.8월의 여름, 그 안에 숨겨진 크리스마스의 의미제가 이 영화의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솔직히 그냥 계절 감성 멜로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목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것인지 알게 됐습니다.영화의 주 배경은 무더운 8월입니다. 서울 어느 골목의 작은 사진관, 아버지와 함께 그 공간을 지키는 청..
영화를 볼 때는 "얼굴 보고 운명을 안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수양대군이 사냥개들을 이끌고 궁궐 문을 들어서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 의심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영화 관상은 관상술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앞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선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권력 투쟁인 계유정난을 정면으로 다루는 묵직한 정치 드라마입니다.송강호의 연기, 이 영화의 중심을 어떻게 잡았을까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송강호라는 배우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주인공 내경을 연기하는데, 내경은 관상술(觀相術)의 대가입니다. 관상술이란 사람의 이목구비와 골격, 기색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성품과 운명을 읽어내는 동양의 전통적인 인상학 체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얼굴을 보..
주말 오후, 별생각 없이 TV를 틀었다가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끝까지 본 영화가 있습니다. 2008년 개봉한 《과속스캔들》이었습니다. 차태현이 억울한 표정 하나로 스크린을 꽉 채우는 순간, 저는 이미 이 영화에 완전히 붙잡혀 있었습니다. 네이버 관람객 평점 9점 이상을 기록한 이유가 직접 봐야 비로소 이해됩니다.차태현 박보영, 실제 가족 같았던 케미의 정체영화의 설정 자체는 솔직히 말해 꽤 황당합니다. 30대 중반의 잘 나가는 라디오 DJ 남현수 앞에 갑자기 딸과 손자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니까요. 미혼인 채로 딸과 손자를 동시에 갖게 된 남자, 글로 읽으면 코믹하지만 이 무게를 실제로 스크린에서 납득시키려면 배우의 역량이 전부입니다.차태현은 이 역할에서 소위 리액션 연기(Reaction Acting)의 진..
CGV 에그지수 99%, 관객 평점 8.3점 이상. 수치만 보면 올해 사극 영화 중 가장 고른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도 솔직히 처음엔 "단종 이야기를 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전문가 평점과 관객 반응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영화도 드문데, 그 이유가 뭔지 직접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께 제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줄거리: 유배지가 아닌 한 인간의 이야기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 쉽게 말해 수양대군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쿠데타 — 이후, 어린 왕 이홍위는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됩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西江)으로 둘러싸이고 한쪽은 절벽으로 막힌 천연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