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모히칸》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전쟁 액션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음악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봤을 때 비로소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극이 아니라, 사라지는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걸 느꼈습니다.자연과 문명 — 이 영화가 보여주는 두 세계의 충돌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본 건 단순히 재미를 찾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놓쳤던 게 있다는 느낌이 계속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보면서 화면을 좀 더 꼼꼼히 들여다봤는데, 그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공간의 대비입니다.요새 안은 계급과 명령, 군사적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먼로 대령이 지키는 윌리엄 헨리 요새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숲은 전..
잘 만든 영화가 꼭 좋은 영화는 아니라는 걸, 저는 '휴민트'를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넷플릭스 글로벌 1위까지 찍은 영화가 왜 극장에선 200만 명에 그쳤을까요. 제작비 230억 원이 투입된 류승완 감독의 신작,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아, 이건 류승완 영화가 아니다'였습니다.장르 배신: 착한 스파이는 왜 영화를 망치는가첩보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주인공이 얼마나 더럽게 구는지를 유심히 봅니다. 스파이물의 핵심은 주인공도 시스템의 부품이라는 데 있거든요. 그런데 '휴민트'의 조 과장(조인성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휴민트(HUMINT)'란 Human Intelligence의 줄임말로, 쉽게 말해 사람을 자산으로 삼아 정보를 빼내는 행위를 뜻합니다. 여기..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이거 그리스 신화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는 제작비 약 3,500억 원, 영화 역사상 최초 전편 아이맥스 필름 촬영이라는 수치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무게감을 갖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서사의 뿌리, 즉 호메로스의 서사시 를 조금은 알고 가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배경을 정리해 봤습니다.그리스 신화의 가장 거대한 하이라이트, 오디세이아란 무엇인가저는 어릴 때 그리스로마 신화 만화를 꽤 열심히 읽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전부 트로이 목마, 외눈박이 거인, 세이렌의 노래 같은 에피소드들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장면들이 전부 와 ..
이경규 하면 웃음이 먼저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가 감독·제작·주연까지 맡아 직접 발차기를 날리는 액션 복수극을 찍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1992년 개봉한 〈복수혈전〉은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틀었는데,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이 영화, 도대체 무슨 이야기입니까복수혈전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억울하게 감옥에 간 남자가 출소 후 악당에게 응징한다"입니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그 단순함 속에 90년대 한국 누아르 특유의 정서가 꽤 촘촘하게 박혀 있습니다.주인공 최태형은 동생과 함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인물입니다. 지역 건달 조직의 두목 마태오와 그의 아버지 마 회장이 이 구역을 장악하려 하지만, 최태형은 단칼에 거절합니다. 건달이 협박 편지까지 정성스럽..
제작비 1천만 달러로 만들어 전 세계 5,700만 달러를 벌어들인 1985년작 〈코만도〉. 손익 기준으로만 보면 그저 그런 성적이지만,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비디오로 봤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혼자 군대 하나를 박살 내는 장면이 당시 제 눈에는 말 그대로 신의 영역처럼 보였으니까요.시대적 배경 — 람보와 경쟁하던 80년대 마초 액션의 시대〈코만도〉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람보〉 시리즈에 대항하기 위해 기획되었다는 설이 꽤 설득력 있게 전해집니다. 영화 안에서 주인공 존 매트릭스가 그린베레 출신 용병과 맞붙는 장면에서 직접 "그린베레는 내 밥이지"라는 대사를 내뱉는 것을 보면, 단순한 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다시 돌려봤는데, 그 장면에서 피식 웃음이 나올..
2001년 개봉 당시 818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이 바로 곽경택 감독의 입니다. 부산 사투리와 거친 느와르(noir) 장르의 외피 안에 이렇게 묵직한 우정 이야기가 들어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네 친구의 우정과 의리 지금 시대에 보기 드문 남자들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줄거리 — 1976년 부산, 네 친구의 이야기이 영화의 시작은 1976년 부산입니다. 깡패 두목의 아들 준석, 장의사 아들 동수, 공부 잘하는 상택, 그리고 중호. 네 친구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집을 들락거리고, 성인 잡지를 동네에 팔아넘기고, 롤러장에서 싸움에 휘말립니다. 제가 이 초반부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캐릭터 하나하나가 너무 살아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준석이 상택에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