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북미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것도 종교 영화로. 영화 킹 오브 킹스는 단 17일 만에 한국 영화의 북미 흥행 기록을 전부 갈아치우며 830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17일 만에 기록을 바꾼 북미 흥행, 그 구조적 이유종교 영화는 신자들만 보는 거 아닌가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킹 오브 킹스는 50여 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흥행을 기록했고, 특히 북미에서는 한국 영화 역사상 전례 없는 성적을 냈습니다. 이걸 단순한 종교적 열기로만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했습니다.영화의 뼈대는 메시아닉 내러티브 구조입니다. 여기서 메시아닉 내러티브란 ..
1996년까지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강제 노역 시설, 막달레나 세탁소에는 약 1만 명의 여성이 수용되었습니다. 제가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종교 기관이 70년 넘게 이 사실을 감출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침묵을 다룬 영화가 이토록 조용할 수 있다는 것이.막달레나 세탁소, 70년의 침묵은 어떻게 가능했나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이름 자체를 몰랐습니다. 찾아보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1996년까지,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는 미혼모·성폭행 피해자·빈곤 가정의 소녀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수용한 뒤 무보수 세탁 노역을 시켰습니다. 이것이 막달레나 세탁소의 실체입니다.이 시설이 70년 넘..
가족 때문에 어딘가에 묶여 있다는 느낌, 살면서 한 번쯤 받아본 적 있으실 겁니다. 저는 길버트 그레이프를 처음 봤을 때 그 감각이 너무 또렷하게 느껴져서 한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1993년 작품인데,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공간 하나, 표정 하나, 작은 몸짓 하나에 심리적 의미가 겹겹이 쌓인 영화입니다.엔도라라는 공간이 만드는 가족 트라우마일반적으로 가족영화는 따뜻한 공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 공식을 비틀어 놓습니다. 무대가 되는 마을 이름 '엔도라(Endora)'에는 영어 단어 'end'가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알고 나니 이 이름 자체가 이미 탈출 불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게 ..
저는 어린이 영화라는 말에 방심했습니다. 원작 웹툰 를 먼저 읽고 들어갔는데, 나오면서 한동안 자리를 못 떴습니다. 즐거운 영화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가 싶었는데,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힘이었습니다.원작 웹툰과 영화, 같은 이야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원작 웹툰을 먼저 읽은 상태에서 극장에 들어갔으니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무게감을 희석시키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감정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렸습니다.원작 웹툰은 평점 9.9대를 기록한 작품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그림체 사이에 '슬픔의 나무'라는 동화가 삽입되어 있는데, 저는 그 짧은 이야기를 읽다가 실제로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다이의 상황과 맞물리는 구조..
영화를 2시간 30분 다 보고 나서 "이게 무슨 이야기지?"라는 생각이 든 적 있으십니까? 저는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처음 봤을 때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 스스로 퍼즐을 맞추게 하는 이 영화의 구조가 결국 저를 두 번, 세 번 다시 앉게 만들었습니다.두 번 보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 비선형 서사의 설계처음 감상 때 저는 전반부를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산타모니카 도로에서 사고가 나고, 기억을 잃은 리타가 베티의 숙모 집에 숨어드는 장면을 보면서 그냥 스릴러 문법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두 번째로 돌려보니 처음부터 어딘가 이상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라라랜드는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4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입니다. 저는 뮤지컬 장르를 원래 잘 안 봅니다. 갑자기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어색하게 느껴져서요. 그런데 이 영화만큼은 보면 볼수록 다른 감정이 쌓였습니다.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는 것,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영화입니다.뮤지컬 넘버가 어색하다고 했다가 말을 바꾼 이유일반적으로 뮤지컬 영화는 감정이입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대사 대신 노래가 나오는 순간 몰입이 끊긴다는 느낌 때문에 장르 자체를 피해왔습니다. 그런데 라라랜드를 처음 보다가 어느 시점부터 그 어색함이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제가 미아와 세바스찬의 상황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이 영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