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없이도 관객을 화면에 못 박아 둘 수 있을까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그게 가능한 일인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장 선명하게 남은 장면들이 전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장면들이었습니다.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그런 영화입니다.앙상블 연출, 왜 이 영화가 해외에서 더 극찬받는가일반적으로 영화 연출에서 감정의 고조는 클로즈업(close-up)으로 만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클로즈업이란 카메라가 피사체에 극도로 접근해 인물의 표정이나 특정 사물을 화면 가득 담는 촬영 기법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상업 영화가 감정적 순간마다 배우의 얼굴을 가득 채우는 방식을 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그런데 살인의 추억은 이 공식을 정면으로 거스릅니..
영화를 보고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림웍스가 드래곤 길들이기 실사판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디즈니 실사판들이 워낙 엇갈린 평가를 받아온 터라, 또 한 번의 실망을 각오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실사화의 방향성, 이번엔 달랐다제가 직접 극장에서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팀은 원작을 정말 이해하고 있구나"였습니다. 원작 감독인 딘 데블로이스가 실사판 연출까지 직접 맡았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성패를 가른 핵심 요인이라고 봅니다. 원작을 만든 사람이 다시 카메라를 잡으니, 이야기의 결이 흐트러질 이유가 없었습니다.이번 실사판은 원작과 거의 동일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갑니다. 바이킹 섬 버크에서 드래곤 사냥에 소질 없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플레처가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틀렸나, 맞나"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거든요. 위플래시는 드러머 앤드류와 지휘자 플레처의 이야기지만, 사실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한계를 어디까지 밀어붙여야 진짜 성장인가 하는 질문입니다.플레처의 교수법, 빌런인가 스승인가플레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팽팽하게 맞서는 편입니다. 그를 폭군으로 보는 분들은 그의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지목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데, 뺨을 때리는 장면보다 더 불편했던 건 패드립과 인종차별 발언이었습니다. 교육자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말들이 너무 거리낌 없이 나왔거든요.반면 플레처를 단순한 빌런으로 보기 어렵..
27년전 처음 매트릭스를 봤을 때, 솔직히 그냥 멋있는 액션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찾아보니 이 영화가 1999년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묻어 있는 철학의 밀도가 상당했습니다. 워쇼스키 자매가 시뮬레이션 현실, 자유 의지, 예언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쌓아 올린 세계관은 지금 다시 봐도 압도적입니다.빨간 약 한 알이 묻는 것들혹시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으십니까? 지금 내가 보고 듣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누군가가 설계한 것이라면 어떨까, 하고요. 매트릭스는 바로 그 질문을 스크린 위에 그대로 꺼내 놓은 영화입니다.영화의 배경은 인공지능(AI)이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인간을 배터리로 활용하는 디스토피아입니다. 기계는 인간의 저항을 막기 위해 시뮬레이션 현실, 즉 매트릭스를 구축합니다..
피를 나눠야만 가족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 질문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아이가 병원에서 뒤바뀐 채 6년을 자란 두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가정 드라마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보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인지 실감하게 됩니다.혈연 중심 가치관이 흔들리는 순간료타는 일류 기업에 다니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입니다. 아이의 피아노 연습을 매일 감독하고, 면접장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며, 가정 환경까지 흠잡을 데 없이 관리합니다. 그는 이른바 아버지-자녀 간의 '역할 모델 전수'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인물처럼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한 편이 개봉하고 나서 실제 장소가 새벽 3시에도 차량 100대가 몰리는 핫플레이스로 변한다는 게, 직접 후기들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믿기지 않았거든요. 공포 영화 '살목지'가 만들어낸 현상은 영화 자체보다 어쩌면 더 흥미롭습니다. 영화 리뷰와 함께 이 기묘한 사회적 현상까지 한번 짚어봤습니다.귀신보다 사람이 먼저 도착했다, 살목지의 관광지화여러분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곳에 일부러 찾아가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 심리가 이해는 되면서도 늘 의아했는데, 이번 살목지 현상을 보면서 그 궁금증이 좀 풀렸습니다.영화 개봉 이전의 살목지는 해가 지면 인근 주민들이 전부 피해 다니던 곳이었습니다. 귀신 소문이 오래전부터 있었고, 흉지(凶地)로 소문난 장소였기 때문에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