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나오는 내내 말을 잃었습니다. 제가 직접 봐놓고도 며칠째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결국 글로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아일랜드 영화 '말 없는 소녀'는 조용하고 작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사람을 가장 깊은 곳에서 건드립니다.정서적 방임 — 소녀는 왜 말이 없었을까영화가 시작되면 코우트라는 소녀가 아버지 차 뒷좌석에 앉아 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는 눈이 무표정합니다. 처음엔 그냥 내성적인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눈빛이 단순한 내성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아버지는 딸을 먼 친척집에 맡기러 가는 길에도 술을 마시고, 불륜 상대로 보이는 여자를 태웁니다. 코우트가 몇 번째 아이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그냥 겉도는 아이"라고 ..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연출, 인물분석, 수상)어떤 영화는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붙들고 있게 만듭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가슴 한편에 뭔가가 내려앉아서 수습이 안 되는 느낌. 저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고 나서 꽤 오랫동안 그런 상태였습니다. 복싱 영화라는 장르 안에 이렇게 묵직한 질문들이 들어찰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이스트우드가 설계한 연출의 밀도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이 영화에서 구사한 연출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절제'입니다. 그리고 그 절제가 오히려 관객을 더 깊이 끌어당깁니다.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의 활용이었습니다. 키아로스쿠로란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피사체의 입체감을 강조하는 조명 기법으로, 르네상스..
그린 마일 (존 커피, 사형제도, 도덕적 딜레마)영화를 보다가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리모컨을 손에 쥔 채로, 화면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그 순간입니다. 저에게 그 영화가 바로 '그린 마일'이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존 커피가 전기 의자 앞에 서는 장면에서 손이 굳어버렸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 즉 우리는 과연 타인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그 질문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존 커피가 보여주는 도덕적 딜레마1935년 대공황이라는 시대적 배경 위에서, '그린 마일'은 루이지애나주 콜드 마운틴 교도소 사형수 간방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교도관 폴 에지콤은 규칙과 원칙을 지키며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 믿고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존 커피라는 거구의 사형수가 들어오면..
하치 이야기 (실화 배경, 충성심, 영화 추천)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반려동물 영화를 잘 못 봅니다. 감정 소모가 너무 크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게 실화라고?" 싶은 마음에 검색을 시작했고, 그렇게 알게 된 하치코의 진짜 이야기는 영화보다 훨씬 더 묵직했습니다.기다림이 10년이 된 사연: 하치코의 실화 배경영화 속 이야기는 길 잃은 아키타견 한 마리에서 시작됩니다. 음악대학 교수인 파커가 퇴근길 기차역에서 이 아이를 발견하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데려오게 됩니다. 이전에 키우던 반려견을 잃은 후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아내와 약속한 터라, 파커는 새 주인을 찾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정이 ..
아름다운 여행 (동심, 힐링 영화, 야생 조류)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1996년 작이라는 말에 별 기대 없이 틀었다가, 끄지 못하고 끝까지 봤습니다. 기러기 떼와 경비행기가 함께 하늘을 가르는 장면 하나가 머릿속에서 며칠째 떠나질 않더군요. 삭막한 일상에서 이런 감각이 남아 있다는 게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습니다.동심을 잃은 어른에게 건네는 영화 한 편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이 영화가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열세 살 소녀 에이미이고, 이야기 자체는 단순합니다. 공사로 보금자리를 잃은 캐나다 기러기 알들을 에이미가 직접 부화시키고, 경비행기를 타고 기러기들과 함께 월동지인 미국 버지니아까지 날아가는 여정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이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거리, 음악, 정체성)솔직히 저는 이 작품을 처음 들었을 때 흘려들었습니다. 제목에 '케이팝'이 대놓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뭔가 억지스럽게 한류를 끌어다 쓴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제 선입견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넷플릭스 실시간 1위를 달리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거리와 음악 그리고 주인공의 성장을 중심으로 제가 직접 본 감상을 풀어봅니다.제목에 속았다가 줄거리에 빠졌다일반적으로 '케이팝'이나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작품은 가볍고 팬덤을 겨냥한 홍보용 콘텐츠라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 작품은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줄거리 자체가 꽤 탄탄했습니다.이야기의 중심에는 걸그룹 헌트릭스가 있습니다. 루미, ..
